‘만물의 영장’이라더니… 인류는 왜 때때로 멍청해지는가

입력 : 2024-08-01 13:35:34 수정 : 2024-08-01 16:20:12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페이크와 팩트 /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확증편향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무논리’의 흑역사
증거 따르는 과학적 회의주의 절실

<페이크와 팩트> 표지. <페이크와 팩트> 표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원래는 화폐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인생사가 다 그렇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시리즈 ‘돌풍’의 주인공 박동호(설경구 분)는 극 중 이런 말을 했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이지.” 아돌프 히틀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빨리 믿는다.” 애석하지만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많은 경우에, 양화(진실)는 악화(거짓)를 이기지 못한다.

<페이크와 팩트>는 팩트가 페이크에 밀려 벌어진 다양한 논리적 흑역사를 탐색한다. 책은 가장 먼저 중국의 3년 대기근을 예로 들었다. 1950년대 마오쩌둥 중국 주석은 ‘참새 박멸’을 주창했다. 농부가 기른 곡물을 먹어치운다는 이유였다. (사실 참새의 주식은 곡물이 아니라 벌레다.) 조류 전문가 정줘신은 참새가 해충을 통제하는 중요 동물이라고 경고했지만, 오히려 ‘권위적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사상 재교육과 강제노동을 받아야만 했다. 1년이 안 돼 참새 약 10억 마리가 죽었고,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가 폭증해 곡식을 먹어치웠다. 중국은 뒤늦게 구소련에서 참새를 수입해왔지만 인민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이 밖에도 △이미 시체가 되었으나 변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살인자로 몰린 교황 △19세기 미국 대륙횡단 철도사업 당시 뱀 기름을 만병통치약으로 팔아 억만장자가 된 판매원 △아이를 지킨다는 이유로 오히려 백신을 반대하는 자연주의 양육자 등 실제로 일어난 ‘무논리’의 흑역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무엇이 이러한 ‘판단 미스’를 불렀는지 그 요인까지 살핀다. 저자는 각종 논리 오류나 통계·확률의 잘못된 활용 등이 인간으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논리 오류 중 하나로 휴대전화 전자파가 암을 일으킨다는 오해가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문서는 ‘바이오이니셔티브 보고서’다. 2007년 발표하고 2012년 업데이트된 이 보고서의 저자들은 ‘모든 무선 주파수 복사는 전자기복사다 / 일부 전자기복사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 / 따라서 무선 주파수 복사는 암을 유발한다’는 흐름 때문에 오류에 빠졌다. ‘모든’과 ‘일부’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정의한 데서 생긴 오류다.

통계나 확률을 잘못 활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영아돌연사증후군의 발생 확률(8543명 중 1명 꼴)이 극히 낮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두 아들을 연이어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잃은(그 확률은 무려 7300만 명 중 1명 꼴이다) 부부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했고 유죄로 평결한 경우가 실제로 199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학교는 성차별로 고소 당했다. 남성 지원자의 합격률(44%)이 여성 지원자의 그것(35%)보다 높다는 것이 성차별의 근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모두 실제한 사건들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여전히 확증편향적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것은 정치적 의견의 문제를 넘어 팩트마저 왜곡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많은 경우 팩트는 페이크에 진다. 책은 거짓에 속지 않으려면 과학적 회의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위에 혹하지 말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맹신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돌풍’의 박동호는 앞서 언급한 대사 직후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한 번은 믿어보고 싶다. 진실이 이길 거라고.” 박동호와 같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책을 권한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지음/김보은 옮김/디플롯/544쪽/2만 5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