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천재적인 테너가 새로 등장할 때면, ‘파바로티의 환생’이라는 식으로 칭찬하곤 한다. 그러나 파바로티 이전의 테너에게 최고의 찬사는 ‘카루소의 환생’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만큼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란 이름은 20세기 성악의 대명사였다.
이탈리아 나폴리 빈민가에서 일곱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난 카루소는 열 살이 되던 해부터 공장에 나가서 막일하며 밥벌이했다. 저녁 시간을 틈타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1895년 나폴리에서 데뷔한 후 급성장해 1903년부터 미국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올라 1920년 마지막 공연을 할 때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오페라 ‘팔리아치’에서 광대 옷을 입고 ‘의상을 입어라’를 부르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광대’ 또는 ‘위대한 광대’라고 불렀다.
카루소가 뮌헨 국립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공연할 때 일이다. 갑자기 무대장치가 쓰러지면서 카루소의 머리를 때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공연은 계속되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극장장에게 한 직원이 다가와서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극장장님, 만약 카루소가 불구의 몸이 되었다면, 차라리 때려죽여 버리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그 종신 연금을 우리가 어떻게 지급할 수 있겠습니까?”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그만큼 카루소의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 계약하려면 일단 백지수표를 들고 가는 게 기본이었다는 말도 있다.
카루소는 초기 레코드 산업의 주인공이었다. 1902년 뉴욕 그라모폰 녹음실에서 ‘의상을 입어라’를 녹음했는데, 이 음반은 세계 최초의 밀리언셀러 음반이 되었고, 그로 인해 음반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는 동안 약 250개의 음반을 남긴 카루소는 1921년 8월 2일, 48세라는 한창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 세상을 떠난 카루소를 생각하며 이탈리아 작곡가 루치오 달라가 지은 칸초네 ‘카루소’를 듣는다. 달라는 카루소가 말년에 투병하면서 머무르던 나폴리의 호텔에 묵으면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비롯하여 안드레아 보첼리, 셀린 디옹, 라라 파비앙, 안나 옥사 등 많은 가수가 녹음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파바로티 버전이다. 누구보다 화려하던 사랑과 영광의 세월을 반추하면서 부르는, ‘백조의 노래’ 같은 곡이다.
“불빛 반짝이는 밤바다, 바람은 몰아치고, 소렌토가 보이는 낡은 테라스에서, 한 남자가 여인을 껴안고 흐느끼네…. 당신을 정말 사랑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겐 이 사랑이 사슬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내 혈관 속 피를 녹여내는 사슬….”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