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을 들으면 수산물 경매가 이뤄지는 위판장이 주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이면에 숨겨진 공간들 역시 이색적이다. 그날 경매된 수산물이 바로 판매되는 소매장부터 어시장 사람들이 경매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매점과 식당 등이 그런 곳이다. 이 공간들은 바쁜 성어기에 어시장 내에서 식사부터 차까지 신속하게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시장과 함께 60여 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이색 공간들도 올해 말 본격적으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어시장에 카페가 없는 이유
어시장 입구에는 ‘이동식 찻집’이 있다. 경매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 오전 4시에 문을 연다. 비린내 나는 생선을 다루다 보니 어시장 사람들은 카페를 찾기 어렵다. 대신 서서 빠르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이동식 찻집을 애용한다. 1980년대부터 이곳을 지켜온 이동식 찻집의 사장은 단골손님들의 커피 취향을 바로 기억해 주문도 하기 전에 차를 내어준다. 1990년대만 해도 하루 수백 잔을 팔았지만, 위판량이 줄어들고 인력이 노령화되면서 이곳을 찾는 손님도 많이 줄었다. 이곳은 어시장의 다양한 정보가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생선을 사러 오는 소매상들은 찻집에 어떤 생선이 들어왔는지 묻기도 한다. 어시장 입구에 위치해 있다 보니 소매상들의 배달 중개도 담당한다.
■부산에서 가장 신선한 생선
어시장에서 당일 경매가 이뤄진 상품 중 일부는 어시장 별관 쪽에 자리한 소매장에서 곧바로 판매된다. 부산과 경남의 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상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구입하는 고등어 대부분은 상인들이 이곳에서 떼간 물건이다. 소매장은 경매가 끝날 무렵인 오전 5시면 문을 연다.
소매인 혹은 소중매인이라고 불리는 점포 주인들은 각자 지정된 중도매인으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아 상인들에게 판매한다. 1974년에 문을 연 소매장은 현재 1200평 규모로, 정식으로 등록된 소매인은 88명이다. 3년 전만 해도 전체 종사자가 260명에 달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며 크게 줄었다.
35년째 소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원찬 상인번영회장은 “소매장은 중도매인과 소비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장소”라며 “매일 아침 부산에서 가장 싱싱한 생선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어시장의 사랑방들
소매장 내부에는 수산물을 파는 점포 외에도 간이 식당 역할을 하는 매점 두 곳이 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느라 아침을 거른 소매장 사람들은 이곳에서 끼니를 때운다. 음식과 함께 술도 파는데, 소주를 잔 단위로 파는 게 특징이다. 점포 자리를 비운 채 오래 머물 수 없는 이들이 어시장에 많기 때문이다.
소매장 안쪽에 있는 매점은 ‘담뱃집’으로 불린다. 담배를 팔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따로 메뉴가 없다. 손님에게 술값만 받고 주인이 그날그날 준비한 재료에 맞게 술상을 차리는 식이다. 또 소매장에서 위판장으로 통하는 길목 인근에 자리한 ‘오뎅집’도 명물이다. 이름처럼 꼬치 어묵과 김밥을 파는 곳이다. 위판장과 가까워서 어시장에서 일하는 항운노조 조합원들도 즐겨 찾는다.
오전 1시면 문을 여는 구내매점은 어시장 내 편의점 역할을 한다. 장화와 요구(갈고리)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도 구입할 수 있다. 구내찻집은 어시장의 사랑방이다. 바빠서 매장까지 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배달도 한다. 전화로 작업 위치를 불러주면 찻집 사장이 직접 스쿠터로 음료를 실어 나른다.
어시장 사람들만 이용하는 식당도 있다. 냉동공장 뒤쪽으로 가면 식당 3곳이 줄지어 있다. 메뉴는 따로 없이 그날그날 다른 반찬을 내어준다. 어시장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이용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중도매인에게 고용돼 일하는 노조 조합원들과 중도매인들이 다른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장과 직원이라는 상하 관계인 탓에 서로 마주치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굳어진 규칙이다.
■대통령 맛집, 구내식당
그날 잡은 생선으로만 반찬을 내어주는 구내식당도 있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이 가능하다. 특히 고등어 구이는 그날 잡은 고등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전국 그 어느 식당보다 신선하고 맛있다고 정평이 나 있다. 김영삼, 노태우,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이 이곳을 다녀간 뒤로 ‘대통령의 맛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정자 구내식당 사장은 “고등어가 안 잡히는 날은 영업을 안 한다”며 “냉동 생선을 사다가 내어줄 수도 있지만, 어시장이라는 명성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대화 사업이 끝나면 소매장에서 수입 수산물을 판매하는 매장과 ‘오뎅집’은 유류 탱크를 철거한 부지로 옮겨진다. 매점과 찻집도 형태는 바뀌지만 편의를 위해 계속 운영될 전망이다. 부산공동어시장 관계자는 “현대화가 완료된 이후에도 운영 주체나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어시장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다양한 편의시설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