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Z세대 뤄화중(駱華忠)은 초경쟁 사회에서 ‘번아웃’됐다고 느꼈다. 31세이던 2021년 4월 회사를 그만 두고 ‘탕핑’(躺平)주의 선언을 블로그에 올렸다. 탕핑은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신조어다. 뤄화중은 쓰촨(四川)성에서 티베트까지 2000㎞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2년이 넘도록 직업이 없어 놀고 있지만 잘못됐다는 생각은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탕핑이 정의다”(Lying flat is justice)라고 말한 뒤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탕핑족은 중국의 청년 세대에 주어진 극도의 경쟁 환경에 대한 반발감에서 생겨났다. ‘996’으로 대표되는 과로 사회를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중국 회사들은 법정 근무 시간을 어긴 채 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제를 강요하는 게 예사다. 이런 가혹한 직장 문화와 함께 21%가 넘는 높은 청년 실업률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짓누르고 있다. 모진 사회경제적 조건이 강요되고 있으니 MZ세대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성공에 대한 강박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안분지족, 즉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뛰쳐나오는 것이다. 탕핑은 단순히 구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회의 압박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발전했다.
졸업 후 취업을 통해 기성 사회로 편입되는 전통 경로를 벗어나는 현상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영미권의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일본의 ‘사토리 세대’(悟り世代)는 직장에서 희망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국의 ‘N포 세대’와 유사하다. 한데, 최근 고용 통계에서 청년 세대의 ‘쉬었음’ 비중이 역대 최고를 기록해서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취준’도 아닌 자발적인 ‘백수’ 상태의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해석과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 쉬는 청년 46만 명 역대 최고 수준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을 보면 15~29세 청년의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8월(40만 4000명) 대비 13.8% 늘어난 46만 명이다. 또래 인구 집단의 5.3%를 차지하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규모다. 직전 6월 42만 6000명, 7월 44만 3000명과 비교해도 확연한 증가 추세다. 2016년 8월 24만 5000명에 비하면 무려 87.8% 폭증했다. 이후 2017년 8월 29만 6000명, 2019년 37만 8000명 등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비대면, 휴업이 늘면서 비정상적인 폭증이 있었다. 2020년 8월 46만 7000명, 2021년 44만 5000명. 팬데믹 종료 후 ‘그냥 쉬는’ 청년 인구는 원상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내 반등세로 돌아서 역대 최고치 수준을 기록한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통계청 고용 조사의 ‘쉬었음’ 항목은 질병이나 장애가 아닌 이유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쉬는 경우다. ‘쉬었음’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다. 실업자로 분류되면 구직 활동을 하는 경우지만 ‘쉬었음’ 청년은 취준생조차 아닌 상황을 의미한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구직을 단념하고 고용시장 밖으로 이탈하려는 추세가 강화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8월 청년 고용률은 46.7%로 역대 최고치였다. 청년층 고용지표는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상은 플랫폼 고용이나 단순 노무직 증가가 두드러진 결과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일자리 미스매치와 고용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그냥 쉰다’는 청년 증가세를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
■ ‘그냥 쉬는’ 세대 이해하기
영미권에서 Z세대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의미로 ‘눈송이’(snowflake)란 속어가 쓰인다. 회사에서 불평만 터뜨리는 젊은 세대가 눈송이처럼 연약하고 쉽게 바스러진다는 뜻이다. 나약하고, 예민하고 한심한 존재라는 의미의 비아냥이다.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의 저자 해나 주얼 미국 워싱턴포스트 비디오저널리스트는 눈송이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진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기성세대와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일 지역노동사회연구소 주최 ‘지역 청년 일자리 및 유출 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2030세대 815명 중 51.5%가 ‘프리터’(freeter)가 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설문 조사가 발표됐다. 프리터는 고정된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면서 생계를 잇는 사람을 말한다. 학업과 취업의 과도한 경쟁주의에 대한 저항감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결과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라이프 사이클에서 젊은 세대의 이탈이 시작됐다고 봐야 된다.
■ 변화 받아들이고 사회도 바뀌어야
탕핑의 기수 뤄화중은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규칙을 박차고 나가자고 선언했다. 아마도 그전에 무수히 많은 문제 제기를 했으나 기성세대는 귀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대한 절망이 결국 사회 밖으로의 탈주로 나타났으리라.
뤄화중이 비판하는 ‘숨막히는 경쟁과 위계 사회’에서 한국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 청년 세대의 ‘쉬었음’ 급증 현상을 한국판 탕핑으로 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이유다. 개인적인 나약함이나 부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규직, 대기업에 높은 임금이면 야근이나 주말 근무, 위계나 부당한 관행이 강요되는 직장 문화가 당연시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 세대는 차라리 ‘쉬었음’을 선택한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수평적 관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기성세대에 거슬리는 언행을 할 가능성도 높다. 이들을 별종 인간으로 취급해서는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여야 해결책에 다가갈 수 있다.
쉬는 청년들을 사회에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책은 기성세대가 쥐고 있다. ‘눈송이’라고 비꼬거나 낙오자로 취급하는 대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요구를 들어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쉬었음’을 선택하면서 무언의 외침을 하고 있다. 이들을 고독과 은둔의 세상에 방치하면 세대 간 괴리가 커지고, 사회 불안 요인으로 이어진다.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걸린 문제다. 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