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위판’ 애증의 60년, 미래 유산으로 다시 꽃피운다

입력 : 2024-10-27 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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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어시장 우여곡절 끝에 철거 돌입

부산 근현대 성장 이끈 수산업 1번지
12년 간 숱한 위기 딛고 현대화 첫 삽
공공성 띤 중앙 도매시장 재탄생 기대
공사 기간 3년 동안 대체부지 마련 등
개문발차 리스크 속 일단 사업 ‘시동’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이 1963년 개장 이후 61년 만에 철거에 들어간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이 1963년 개장 이후 61년 만에 철거에 들어간다. 정종회 기자 jjh@
2028년 준공 예정인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 조감도. 부산시 제공 2028년 준공 예정인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 조감도. 부산시 제공

새벽마다 생선을 크기별로 손수 분류했던 '부녀반', 비위생 우려에도 빠른 처리 속도를 자랑했던 '바닥 위판', 중도매인과 경매사의 소리 없는 전쟁인 '수지식 경매'.

60년 넘게 부산의 아침을 열었던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의 대표적 모습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국내 '수산업 1번지' 어시장이 개장 61년 만에 재래식 시설을 철거하고 새단장에 나서기 때문이다. 낙후한 건물 외관뿐 아니라 관리·운영 주체, 위판 장비 등 모든 것이 바뀐다. 부산 성장의 중심축으로서 다사다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새 도약을 준비한다.

■‘미래 유산’ 될 애증의 60년

1963년 부산항 1부두에 ‘부산종합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어시장은 1973년 현재의 서구 남부민동으로 터를 옮겼다. 이후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키며 국내 수산물의 30%, 고등어의 80%를 유통하는 국내 최대 산지 위판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위판장 면적만 4만 3134㎡에 달하며 부두에는 150t급 어선 2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말 어시장을 ‘2023 부산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어시장은 초창기 정어리, 은조기 풍어와 얼음 판매 덕분에 큰 성장을 이뤘다. 1980년대에는 한일 간 민간 교류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1982년 10월 일본 후쿠오카시 어업 우호 친선사절단이 방문했으며, 1년 뒤에는 당시 최대 수출 창구로 꼽히던 시모노세키중앙어시장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1980년대 씨름 선수 육성에도 힘을 쏟아 소속팀이 이충무공 기념 제1회 전국 장사씨름대회에서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1983년에는 부산 유일의 씨름 훈련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지역에 뿌리내린 만큼 숱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2009년에는 수산물 불법 유통 정황이 포착돼 해경이 압수수색에 나서는 일명 ‘뒷고기 사태’가 터졌다. 5개 수협이 공동으로 출자한 어시장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탓에 사장 선출 때마다 내홍을 겪었다. 2009년 집행유예 기간 중인 인사가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노조가 사무실을 봉쇄하는 일이 빚어졌고 결국 선출 무효가 결정됐다. 사장 선거 때마다 조합 간 물밑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선거 이후에도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바닥에 생선을 부어 분류·경매하는 재래식 위판 방식으로 ‘비위생’이라는 꼬리표도 계속 따라다녔다. 이에 1980년대부터 위판장 방역 확대, 위생적인 어상자 사용 등을 위한 환경정화 운동과 구성원 결의대회가 잇따랐다. 지난해는 나무 대신 플라스틱 어상자가 처음 도입됐다.

■‘개문발차’ 속 기대와 우려

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2012년 박근혜 정부 공약에 포함됐지만 12년간 지지부진했다. 어시장 공영화 추진, 현대화 사업 주체 변경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사업이 지연됐고, 이는 고스란히 사업비 증액으로 이어지며 또다시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만일 올해까지 사업이 미뤄졌다면 총사업비가 10% 이상 증액돼 사업타당성 검토를 다시 받아야 했다. 이 경우 기존 국비 지원(사업비의 70%)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 사실상 사업이 무산된다.

다행히 올해 착공에 성공하며 ‘골든 타임’은 사수했지만 여전히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우선 현대화 사업으로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면서 어시장이 공공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5개 민간 수협이 소유하고 있는 ‘산지 위판장’이지만, 현대화 이후에는 부산시가 관리·감독하는 ‘중앙도매시장’으로 바뀐다. 현재 부산에는 반여농산물도매시장, 엄궁농산물도매시장, 국제수산물도매시장 등 총 3곳의 중앙도매시장이 있다. 중앙도매시장은 시가 직접 지도·감독과 인허가, 민원 접수 등 업무를 수행하며, 운영은 민간이 맡는다. 도매시장의 공공성과 운영 활성화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숱한 논란을 낳았던 어시장 운영의 투명성 강화가 기대된다.

비위생 문제의 주범으로 꼽힌 바닥 위판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시장은 현대화 사업 이후 수산물을 크기별로 자동으로 분류해 주는 ‘선별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부녀반 인력난과 비위생적인 위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는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판 공간 축소다. 공사 중 일부 위판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만큼, 수산물 경매에 지장이 생긴다면 이해관계자인 선사나 중도매인 측이 항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어시장은 시의 설계안대로 공사하면 위판장 크기가 줄고 기둥 사이 간격이 좁아져 차량 통행이나 선별기 설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본다.

지역 수산업계는 어시장 현대화 사업이 단순한 시설 개보수를 넘어 새로운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수산업 관계자는 “어시장은 위판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산뿐 아니라 전국 수산업계에 중요하다. 현대화 사업을 통해 운영 투명성을 높이고 비위생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면서 “다만 공사 동안 경매 지연이나 대체 위판장 문제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해관계자 간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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