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 금성호

입력 : 2024-11-12 18: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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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가을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 운반선에 몸을 실었다. 굴욕적이라는 평가 속에 체결된 한일어업협정 직후 달라진 연근해 조업 현장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19시간을 달려 본선 ‘75금성호’가 조업 중인 제주도 서귀포 남쪽 해상에 도착했다. 등선으로 불 밝힌 밤바다에서 그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 불빛에 반사돼 반짝이던 고등어 떼의 장관은 평생 남을 기억 속 한 장면이다.

고등어 조업 현장 취재 기억을 떠올린 건 최근 제주 해역에서 발생한 대형선망 ‘135금성호’ 침몰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다. 공교롭게도 당시 취재를 위해 올랐던 배도 같은 이름의 금성호였다. 밤바다를 ‘꽃’처럼 수놓았던 그 장관과 선원들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겹치며 가슴 먹먹해진다.

선망은 그물로 어군을 포위해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점점 좁혀가며 어획물을 잡아 올리는 조업 방식이다. 본선과 등선 2척, 운반선 3척 등 6척이 선단을 이룬다. 본선에서 탐지기로 물고기를 탐지하면 등선이 불을 밝혀 어군을 모으고 등선에 꼬임줄을 매단 후 본선이 그물을 원으로 둘러쳐 포획하고 그물 아래를 조이면서 그물망에 가둬 잡는다. 금성호 침몰이 그물망 속 고등어를 운반선을 바꿔가며 옮겨 싣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하는데 고등어를 너무 많이 잡아 본선이 복원력을 잃었다는 수사 당국 추정은 조업 과정을 생각하면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쨌든 본선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가장 분주한 순간이다 보니 갑자기 침몰하는 배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화를 당했을 것이다.

대형선망은 우리 연근해수산업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이다. 국민 생선으로 불리는 고등어가 주를 이루고 전갱이 삼치 오징어 등 회유성 어종을 대상으로 조업한다. 1개 선단을 통 단위로 일컫는데 호황기던 1980년대 48통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18통으로 쪼그라들었다. 한일어업협정으로 어장이 축소됐고 기후변화로 어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어획량이 줄어드는 등 대형선망 업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사고 소식을 듣게 돼 더욱 가슴 아프다.

화면으로 사고 현장을 보니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열악한 조업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우리가 밥상에서 마주하는 생선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고 있는 선원들이 흘린 땀의 대가다. 유명을 달리한 선원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에 대한 빠른 수색을 기원한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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