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는 대략 46억 년. 최초의 생명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류가 쌓은 과학 지식은 38억 년 전쯤 바다에서 생명체의 기본 형태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정 환경에서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된 뒤 더 복잡한 유기물로 진화했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이는 가설일 뿐 증명할 길은 없다.
지구 생명의 기원을 외계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이를 ‘범종설(汎種說·panspermia)’이라 한다. 우주에서 떠돌던 미생물이 혜성 혹은 운석의 충돌로 지구에 도착했고 이게 생명의 씨앗이 돼 진화하고 번성했다는 이론이다. DNA 구조를 밝혀낸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도 일찍이 이를 주장한 바 있다.
그 구체적 근거로 꼽히는 생명체가 있으니 바로 문어다. 얼음 운석을 타고 지구에 날아온 냉동 배아가 문어의 조상이라는 가설이 2018년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지구 유전자와 외계 유전자가 섞여 문어와 두족류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근거는 여럿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갑자기 나타난 점, 복잡한 특징을 담당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추적되지 않는다는 점 등. 하지만 주류 과학계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어찌 됐든 문어의 외관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머리가 크고 지능이 높은데, 온몸은 신경세포로 채워져 형태와 색깔을 쉽게 바꾼다. 무척추동물임에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데 척추동물 이상의 소통 능력을 지녔다.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이 가능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뜻이다. 문어는 확실히 인간과 다른 지성과 감정을 지닌 지구상 가장 신비로운 존재다.
최근에는 특별한 생명체로서의 문어를 실감케 하는 또 다른 뉴스가 전해졌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인류의 멸망 뒤 지구에 새로운 문명이 세워질 경우 그 주인공으로 문어를 지목한 것이다. 문어는 물 밖에서 30분 동안이나 숨을 쉴 수 있다고 한다. 육지로 나온다면 포유류 등을 사냥할 수 있고, 일부 개체는 바다에서 도시를 건설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마냥 흰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이 생명체의 정체를 우리는 미처 다 알지 못한다.
문어의 진화된 미래는 어쩌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경지 너머의 것인지도 모른다. 지성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이요 오만이다. ‘우주 시대’를 맞는 인간의 길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것을 묻게 되는 이즈음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