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4일 오전 4시 30분에 국무회의를 통해 해제했다. 불과 6시간의 짧은 계엄령이었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극도의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특히 여야가 새벽 1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기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은 전시를 방불케할 정도의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전날 3일 오후 10시 25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 다수 참모조차 모른 채 극비리에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계엄이 선포되자 사정기관은 물론 각급 부처에 ‘비상 대기’와 ‘긴급 소집령’이 떨어졌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전국 지방 시도청장에게 정위치 근무하라고 지시했고, 서울지방경찰청은 4일 오전 1시부로 산하 31개 경찰서에 ‘을호비상’을 발령했다. 을호비상은 경찰 비상근무 중 2번째로 높은 단계다. 군·경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사이, 여의도에선 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전개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후 11시께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국회 표결을 위해서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선 최소 150명의 국회의원이 시급하게 본회의장에 모여야 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다수가 국회 본청으로 속속 모였고, 국민의힘도 한동훈 대표와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로 진입이 이뤄졌다.
비슷한 시각 총을 멘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고, 의원·보좌진과 격렬한 대치가 벌어졌다. 본회의장 안에 있던 야당 보좌진들은 책상과 의자 등을 본청 정문 쪽으로 옮기며 군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쳤다. 군인 일부는 본회의장 창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했고, 이에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특수부대가 진입하려 한다” “남성 보좌진들 나와주세요” 등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소화기가 분사되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이 국회의사당 정문과 측문을 막은 상태에서 많은 여야 의원은 담을 넘어 본청에 진입했다. 국회 로텐더홀에서 보인 국회의원은 4일 0시쯤 약 60명이었지만,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 1시께에는 의결정족수를 넘은 190명으로 늘었다.
국회 정문 밖에는 계엄령 선포에 반발한 시민 1000여 명(추정)이 모여들어 “비상계엄을 철폐하라” 등을 외치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육군’이라고 적힌 군 버스 등 군 차량이 국회 앞에 도착하자 “반란군이다”라고 외치며 맨 몸으로 차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러나 총과 헬멧,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일부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 출입문마다 지키고 서는 모습이 목격됐다.
계엄군이 본청으로 진입하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우 의장을 향해 “빨리 결의안을 상정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책상을 내리치는 의원도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 일부도 “빨리 처리하세요” “뭐 하는 거야 지금”이라고 우 의장을 압박했다. 우의장은 “국회가 정한 절차에 오류가 없도록 진행해야 한다”며 10여분간 안건 상정을 기다리기도 했다. 결국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오전 1시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됐고, 본회의장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국회 밖 시민들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며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이후 국회 내에 있던 군인들은 여야 의원들과 보좌진의 철수 요구에 따라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철수했다.
이후 여야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공식 선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본회의장에 계속 머물렀고, 시민들 역시 “아직 끝난 게 아니다”며 국회 앞을 지켰다. 이들의 구호는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을 체포하라” 등으로 바뀌었다.
국회의 계엄 해제안 요구에도 3시간 이상 침묵을 지키던 윤 대통령은 결국 이날 오전 4시 27분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를 통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 바로 국무회의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계엄 해제 의사를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은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합동참모본부는 비상계엄에 투입됐던 병력이 4일 오전 4시 22분부로 원소속 부대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30분쯤 뒤인 오전 5시께 국무총리실은 “(오전) 4시 30분에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6시간 동안 전 국민은 물론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계엄령 사태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