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전반의 세계적인 인기를 표현하는 용어인 ‘한류(韓流)’는 우리 국민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음악, 음식, 드라마, 미용 등 연성 분야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방산 등 중공업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은 요즘 세계인들에게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나라로 꼽힐 만큼 선망의 나라가 됐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런 기류는 더 넓어지고 깊어지리라 여겼는데, 섣부르고 지나친 기대였을까.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이 모든 것을 물거품이 되게 했다. 계엄 사태 이후 한국은 졸지에 ‘가고 싶은 나라’에서 ‘방문 주의국’으로 처지가 급락했다. 여행 업계에서는 계엄 쇼크로 외국인들 사이에 “안 가요, 한국” 분위기가 일면서 여행 예약 취소가 잇따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공들여서 쌓아 올리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세간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것도 업계의 귀책 사유가 아니라 국가 원수의 이해할 수 없는 돌출 행동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더 억장이 무너진다.
실제로 현장 분위기는 심각하다는 전언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한국 방문을 계획했던 단체 여행객의 예약 취소는 물론 여행 가능 여부 질문도 쇄도하고 있다. 이미 외국 정부 고위 인사의 방한 보류 또는 취소는 시작됐다. 스웨덴 총리는 계엄 선포 직후 방한을 연기했고 미국과 카자흐스탄 국방장관도 방한을 보류 또는 취소했다. 영국 외무부는 광화문과 국회 일대에서 시위가 예상된다며 자국민의 한국 여행 주의를 당부했고, 심지어 전쟁 중인 이스라엘 정부도 한국 여행의 필요성을 검토하라고 공지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이번 사태가 조만간 안정 단계로 수습되지 않는다면 “안 가요, 한국” 분위기는 더 확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매정하고 서운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결정을 탓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한동안 우리 스스로 세계적인 한류 분위기에 고무됐다면 이번 사태는 아직 한류의 폭과 깊이가 그렇게 넓고 뿌리 깊은 상태가 아님을 깨닫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계기는 됐다. 그럼에도 맥이 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일반인도 그럴 지경인데 현장에서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안 그래도 평소 못마땅하던 정치 때문에 응어리만 갈수록 쌓이고 있던 판에 다시 마음속에 새 불덩어리가 생길 판이니 국민들의 울화통이 터지지 않으려야 않을 도리가 없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