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수용 인원이 120명인데 지금 한 테이블밖에 없어요. 코로나19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지난 23일 저녁 7시 30분 무렵.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서 샤부샤부집을 운영하는 문 모 씨는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한참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식당에는 한 테이블에 앉은 손님 네 명의 대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가게 창밖에 붙은 ‘연말·연시 단체 환영’이란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신규 예약은커녕 이미 예약된 건 마저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샤부샤부집은 지금이 손님이 제일 많을 때다. 그동안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단체 손님들이 오곤했는데 요즘은 단체 손님이 크게 줄었다”면서 “고물가에 재료비는 오르고, 경기 침체와 정치적 혼란으로 연말 분위기도 실종되고, 이 와중에 동종 업종과의 경쟁은 더 치열해져서 적자가 눈덩이다.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버텨온 부산의 자영업자들이 다시금 휘청이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데다, 12·3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촉발된 정치적 혼란 상황으로 연말 특수마저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명륜동에서 20년 넘게 운영된 한식 뷔페도 직격탄을 피하지 못해 폐업까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업주 라 모 씨는 “비상계엄이 터진 이후로 매출이 평상시에 비해 50%는 더 떨어진 것 같다”면서 “음식에 부족한 게 있는 거라면 개선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정치 혼란으로 인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자영업자들이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탄했다.
실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비심리는 얼어붙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달보다 12.3포인트(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한 2020년 3월(-18.3P)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한 수치다.
앞선 사례를 살펴보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도 소비자심리지수는 5개월 연속으로 비관적 전망인 기준치 100 아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부정적인 전망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경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비율이 높은 도시인 만큼, 자영업자의 줄폐업이 이어질 경우 경제 타격도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미 내수 부진 장기화로 부산 지역의 자영업자 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부산 경제에 더 큰 타격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부산 지역 자영업자 수는 29만 7000명으로, 동월 기준 처음으로 3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19일 부산시가 4500억 원 규모의 민생안정자금을 긴급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자영업자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선결제 캠페인인 ‘부산 착한결제 캠페인’도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동백전 캐시백 한도 금액 상향과 캐시백 한도 비율 확대 등으로는 침체된 내수를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부산의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19 당시에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그나마 소비 심리가 살아났다”면서 “현 상황에서도 이에 준하는 소비 진작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이정식 회장은 “코로나19 시기에 눈덩이 처럼 늘어난 이자를 갚아가는 시기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탄핵 정국에 접어들었다”면서 “원리금 상환을 대폭 유예하는 등의 대책이나 소비자들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할 내수 진작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