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부산 미술계’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서울 출생으로, 한 번도 ‘서울 미술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부산의 한 미술대학에 근무하면서부터 ‘부산 미술계’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부산 미술계’라는 ‘계(system)’가 최근 퐁피두 부산 유치를 강하게 반대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필자가 퐁피두 부산 찬반 논란을 보는 시각은 분명하다. 이것은 폐쇄계(closed system)와 개방계(open system)의 대립이고, 분명한 것은 서울은 절대 폐쇄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는 있고, 부산에는 없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산은 만년 지방 도시가 될 것이다.
폐쇄계는 1000억 원 넘는 부산시 예산이 해외 미술관 건립과 운영에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고, 이 정도 큰 규모의 예산이면 부산 지역 미술관 또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들에게 사용되어 ‘부산 미술계’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개방계는 부산시에 글로벌 미술관 브랜드를 유치함으로써, 부산시의 국제적 위상과 인지도를 높여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바라는 입장이다.
찬반의 논점이 서로 다르다. 반대하는 시각은 부산의 지역 미술계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찬성 입장은 부산시의 입장에서 문화 인프라 부족을 문제로 보는 것이다.
필자의 시각에서 글로벌 미술관 브랜드의 유치는 부산시의 건축문화 경쟁력을 향상할 기회이고, 성공적 유치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독보적인 건축 설계에 있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를 설계하면서 건축물의 구조체가 겉으로 드러나도록 하여,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하이테크 건축을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 두 건축가는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있는 퐁피두 빌바오 역시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여, 독보적인 건축으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 대표 사례가 되었다.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의 건축 설계도 인천공항을 설계했던 세계적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맡았다.
퐁피두 부산 역시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독보적인 미술관을 설계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파리 퐁피두 센터와 퐁피두 빌바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상당수는 미술관의 소장품 관람보다는 미술관 건축물 자체를 관람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고 할 수 있다. 퐁피두의 브랜드 상징은 미술품이 아닌 미술관 건축물 자체다.
퐁피두라는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역 미술계의 영역이면서도 도시 건축문화의 영역이다. 따라서 퐁피두 부산 건립을 위한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은 ‘부산 미술계’와 직결되는 부산시 문화체육국 예산과 더불어, 도시계획국의 예산을 모두 합쳐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두 부처의 예산 비중 설정이 곧 퐁피두 부산 찬반 논란을 해결하는 주요 방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