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제사상 차리는 데 40만 원가량 쓰려고 합니다. 시장에서 뭘 잡기만 하면 1만 원 운운하니 살 수가 없어요.”
13일 오후, 부산 기장군 기장시장에서 만난 안여순(73) 씨는 훌쩍 오른 농수산물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1시간 동안 시장을 누빈 그의 손수레에 든 것은 못난이 사과 4개뿐이었다. 그것도 잘 익고 흠 없는 사과는 1개 1만 원이라 저렴한 대체품을 찾은 것이었다. 안 씨는 “얼마 전까지 5000원 붙어있던 도라지 한 뭉텅이도 1만 원이라 하고, 파 한 단도 5000원이래서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간다”며 “이번 설에는 최소 40만 원은 써야 상이 차려지겠더라”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김순옥(62) 씨도 지난 1일 신정에 준비한 제사상에 66만 원을 썼다고 맞장구쳤다. 김 씨는 “고기 10만 원, 과일 30만 원 잡으니 순식간에 60만 원이 채워졌다”며 “오랜만에 오는 가족들 과일 좀 먹이려고 밀감, 포도 한 박스씩 하니 가격이 감당이 안 되더라”고 했다.
먹거리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설 명절을 앞둔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올해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시민들과 상인들의 한숨도 깊어진다.
서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탄핵 정국과 제주항공 참사 등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가 겹치며 지갑을 닫는 분위기다. 기장시장에서 10년째 채소류를 팔고 있는 최미현(62) 씨는 “물가가 오른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돈을 쓰질 않는다”며 “배추 5포기 살 것을 1포기만 들고 가고 조금씩만 사니 경기가 안 좋은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침 최 씨 좌판에 온 한 손님도 한 바구니 3000원인 땡초 가격을 듣고는 “1000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인근 대게집에서 근무하는 곽상훈(50) 씨는 “마리당 10만 원 훌쩍 넘는 대게 판매량은 불경기에 티가 난다”며 “명절 전후 매출이 가장 뛰는데 최근엔 매출이 신통치 않다”고 했다.
식자재 값이 오르면서 난감해진 건 상인도 마찬가지다. 7년째 전집을 운영하는 박상수(61) 씨는 “달걀이며 명태포, 식용유 값이 올라서 원 가격을 유지하기가 버겁다”고 말했다. 하루 7kg씩 소비하는 명태포는 봉지당 700원이 늘었고 그조차 팩 안에 든 무게도 700g에서 600g으로 줄었다.
사람들이 자주 사가는 오징어 튀김도 오징어 가격이 마리당 4000~5000원에서 1만~1만 5000원으로 오르면서 몸통 대신 다리만 판매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오징어 몸통은 튀기고 다리는 잘라서 부추전에 팍팍 넣었는데 가격이 올라서 이제 못 한다”며 “가격을 올리면 누가 사 먹나 싶어 유지는 하고 있지만 도매 가격이 더 올라가면 버티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올해 설 차례상 비용 예상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4인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30만 2500원, 대형마트 40만 951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전통시장은 6.7%, 대형마트는 7.2% 상승한 수치다.
계속된 이상기후로 과일류부터 채소류까지 골고루 값이 오른 탓이다. 전통시장 기준 과일류는 지난해 대비 57.9%, 채소류는 32% 급등했다. 배 3개는 1만 3500원에서 2만 7000원으로 배가 뛰었고 사과 3개도 7.4% 올라 2만 1240원이 됐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