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지뢰밭’ 아닌 곳이 없다… 교육정책마저 ‘오리무중’

입력 : 2025-01-22 18: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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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한 달 앞 학교 대혼란

최 대행, 균등 교육 보장 이유로
AI교과서 지위 불인정 野에 반대
기회 균등 위한 고교 무상교육은
정부 재정 증가 이유 거부권 행사
일선 교육현장 부담 더 늘어날 듯

지난해 12월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24 인천디지털교육 페스티벌’에서 초등학생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24 인천디지털교육 페스티벌’에서 초등학생들이 AI 디지털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AI 디지털 교과서와 고교 무상교육 예산 연장 등 올해 신학기에 적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교육 핵심 현안들이 정부·여당과 야당 간 정쟁 탓에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AI 교과서의 경우 야권에서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본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정부·여당은 ‘균등한 교육 기회 훼손”이라며 맞서고 있다. 정치권은 고교 무상교육 예산 문제를 놓고도 서로 “지자체 부담”(정부·여당) “정부 부담”(야권)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관련 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을 벌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국가 단위 사업이 시행 한 달을 앞두고도 시행 여부가 결정이 안 된 경우는 처음 본다”며 비난이 쏟아진다.

AI 교과서 문제는 정치권 갈등으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입법 권한을 쥔 야권이 AI 교과서 부작용과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정부 행태를 문제 삼으며 법률을 통해 시행을 막고 있겠다는 입장이다.

야당 의원들은 "AI 교과서가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과몰입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문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학교 현장에서의 디지털 기기 관리 부담, 개인정보 유출 등도 AI 교과서 시행 이전에 해결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소속 의원들은 가처분 및 헌법 심판 소원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교육 현장 혼란을 막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정부는 거부권 행사로 이런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균등한 교육 기회’ 주된 이유로 설명했다. 최 대행은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될 경우) 무엇보다 학생들은 다양한 인공지능·디지털 기술 기반 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며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최 대행은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야당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재의 요구로 AI 교과서는 당분간 교과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신학기 시작을 앞둔 시점에 고교무상교육 문제까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최 대행은 지난 14일 고교무상교육 국비 지원 기한을 3년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는 “국가 비용 분담 3년 연장 및 분담 비율을 순차적으로 감축하는 대안이 제시됐음에도 충분한 논의 없이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고교무상교육 경비는 지방에서 부담할 여력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야권과 일부 시도 교육감은 고교 무상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각 시도 교육청에 그 비용을 전담하게 하면 고교 무상교육에 학생 복지와 시설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교육 현장은 혼돈에 휩싸여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AI 교과서 개정안이 국회로 돌아오자 혼란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시교육청은 AI 교과서 시행 계획조차 못 세웠다. AI 교과서 업체와의 콘텐츠 구독 계약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AI 교과서 도입에 대한 초중고 현장 수요 조사를 실시했지만, 도입 여부가 최종 확정되지 않아 정확한 조사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무상 교육과 관련해서도 관련 법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각 시도 교육청들은 예산 확보에 애를 먹어야 할 상황이다. 부산시교육청의 경우 고교 무상교육 예산 625억 원을 ‘비상금’인 기금에서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일선 학교와 교육단체에서도 비난이 쏟아진다. 부산 한 초등학교 현직 교사는 “국가 단위 교육 정책이 시행 한 달을 남겨두고 시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처음 본다”며 “어느 장단에 맞춰 수업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교육 정책이 정쟁에 휘말려버린 현재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부산교사노조 김한나 위원장은 “최 대행은 AI 교과서 개정안 거부권 행사 근거로 균등한 교육 기회를 언급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평등적이어야 할 고교무상교육에 대해서는 정작 반대하고 있다”며 “교육이 정쟁화됐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조경선 부산지부장은 “정부가 AI 교과서 도입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속도전으로 진행하다 보니, 학교 현장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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