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노인과 바다’를 만드는 세력들

입력 : 2025-02-13 18:14:59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논설위원

중앙 정치 소용돌이, 부산 철저히 외면
인천, 고등법원에 이어 해사법원 추진
부산 해양수도의 꿈, 물거품 전락 위기
민주당·수도권 의원 설득할 엄두 못 내
홍보 강화 등 보여주기 이벤트만 급급
부산시·정치권, 각성과 전략 마련 절실

중앙 정치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답답한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의 주요 현안이 쏟아지는 탄핵 찬반 뉴스의 파도에 휩쓸려 온데간데없다는 사실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가덕신공항 조기 완공 등 현안은 여의도와 중앙정부 한구석에 내팽개쳐져 있다. 아무리 난리통이라도 할 일은 해야 하는데,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은 두 손을 놓은 모양새다.


최근 민주당과 수도권 국회의원 중심으로 인천고등법원 설립안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민주당 의원 11명 전원 찬성으로 고등법원과 회생법원 설치 법안을 초고속으로 처리했고, 지난해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인천고등법원은 2028년 개원한다. 하지만, 함께 안건으로 올랐던 부산 해사법원 설치 법안은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부산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고등법원을 손에 넣은 인천시와 정치권은 이제 모든 역량을 해사법원 본원 유치에 쏟아붓고 있다. 해사법원은 해양·선박·물류 관련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으로, 해양도시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다. 매년 4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소송비도 지역으로서는 큰 소득이다. 인천의 여야 정치 협력도 눈부시다. 2명밖에 없는 여당 국민의힘 의원이 인천 해사법원 설치를 위한 6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해사법원 본원을 인천에 두고, 지원은 각각 부산·광주에 배분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이 지지하면 그 어떤 법안도 통과될 수 있는 정치 지형이다. 부산변호사협회가 13년 전부터 그 필요성을 주창했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의 무능이 초래한 ‘정치적 재앙’이다. 부산에는 국회의원 18명 중 단 1명만 민주당 소속이다. 반면 인천은 14명 중 국민의힘 의원 2명 외에는 모두 민주당이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 수도권 중심의 정치판에서 부산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힘이 없으면 ‘거래의 기술’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인천고등법원을 지렛대로 삼아 협상할 정치력도 없었다. 이젠 인천 정치권과 민주당에 해사법원 ‘부산 분원’ 설치라도 읍소해야 할 상황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인천시의회는 최근 ‘국립인천해양대학교 설립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해양수산부와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민주당 이병진 국회의원(경기 평택)은 국립평택해양대 설립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도 발의했다.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일극 집중 폐해에도 불구하고 제3의 국립해양대가 개교될 수 있는 정치적 현실이다. 이렇게 부산 해양수도의 꿈과 이니셔티브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부산 시민은 지쳐서 화도 나지 않는다. 애꿎은 바다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이 와중에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시민을 상대로 희망고문만 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12일 ‘한국산업은행법 개정 촉구 국회 청원 대시민 홍보활동 본격 시작’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산 시민의 결집된 힘으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 완수할 것”이라는 제목이다. 부산 남구 용호별빛공원에서 열린 달맞이 축제에서 홍보활동도 벌였다. 산업은행 이전이 ‘부산 시민의 결집된 힘’이 부족해서 표류하고 있을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법안을 내팽개친 민주당과 수도권 의원을 설득할 정치력과 전략이 없기 때문이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대화가 내키지 않으면, 민주당의 다른 대항마, 다른 세력과 사안에 따라 연대할 정치적 상상력조차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죽은 아들 다리만 만지는 꼴이다. 민주당을 설득할 엄두를 내기 싫은 것인지, 애초에 실력이 없는 것인지 애매하다. 대신에 보여주기 이벤트에만 몰두하고 있다. 일 못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도시의 지향점마저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산을 콕 집어 “부산은 젊은 층의 탈출이 심해 도시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라고 보도했다. 세계 2위의 환적 중심항만 부산이 ‘해양수도, 부산’을 선포한 지 올해로 25주년, 내년에는 개항 150주년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의 역량 부족이다. 3월, 개나리가 필 즈음이면, 조기 대선 정치판이 열릴 듯하다. 0.1%의 지지율이라도 얻기 위한 정치권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질 것이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의 뼈를 깎는 각성과 정교한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민주당 탓, 중앙정부 탓만하는 낡은 변명도 이제 듣기 지겨울 따름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