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살람 알레이쿰

입력 : 2025-02-13 18: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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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기억은 잿빛이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 이듬해 종전 1주년 때 현지를 취재하면서 본 팔레스타인은 모진 환경 속에 무뎌진 무채색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연합군 폭격 직전, 이라크 접경 요르단 국경 사막에 설치된 피란민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아연실색했다. 적막한 모래땅이었는데, 모래 폭풍이 쉴 새 없이 눈과 코, 입을 때려 그냥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휑뎅그렁한 사막에 오와 열을 맞춘 거대한 텐트촌의 생경함이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랍어 인사말 ‘살람 알레이쿰’을 외고 다녔다. ‘당신에게 평화(살람)가 있기를.’ 살벌한 검문소를 거쳐 이스라엘로 넘어가서는 발음을 조심해야 했다. ‘샬롬!’ 구약 때부터 사용했던 히브리어 인사말이다. 수상한 시절이 낳은 안부 인사다. 우리의 ‘안녕’을 빼닮았다.

11일 미국과 요르단 정상회담에서 가자지구 주민 이주 문제가 논의됐다는 소식에 잊혔던 모래 폭풍 속 난민촌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 220만 명을 인근 이슬람 국가에 영구 이주시킨 뒤 가자를 ‘접수’하고 ‘소유’해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팔레스타인 접경국이자 친미 성향 요르단을 취임 후 세 번째 정상회담 대상으로 고른 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부동산 개발’에 진심이라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미국을 비롯해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중동 문제 해법으로 지지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뜬금없이 강제 이주를 들고 나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강제 이주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이자 ‘인종 청소’라는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난민 수용국 1순위격인 요르단은 처음에는 강력 반발하더니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2000명 수용’으로 물러나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 줬다.

이라크전 취재 때 전쟁터 한가운데를 지키고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 ‘왜 대피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에 먹먹했다. “삶은 어디나 같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면전 15개월 만에 잿더미가 된 가자지구에 여전히 사람들이 산다.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휴양지 가자’ 구상은 초현실적이다. 차라리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발휘되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강제 이주 대신 새 평화 해법 도출을 압박하는 자극제 역할 말이다. 가자지구 폐허 위에서 미래를 꿈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살람 알레이쿰!”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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