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외마디 비명이 쏟아졌다.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던 게 원인이었을까. 갑자기 코끝이 아릿하게 저려 들더니 온몸이 뒤틀리면서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한바탕 폭풍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시원하다는 느낌도 잠시, 뚜둑 소리가 나더니 허리가 이상하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몸을 조금만 비틀어도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삐끗, 생각해 보니 몸동작과 입소리의 박자가 맞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허리통은 몸의 마비를 넘어 일상생활도 엇박자를 내었다. 써야 할 원고는 미뤄졌고 약속은 취소됐으며 겨우 시작한 운동도 당분간 중단했다. 재채기 한 번의 파장이 이렇게 번져갈 줄은 미처 몰랐다. 나만 운이 없는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머리 감다가 삐끗하기도 하고 운동화 끈을 묶다가 척추 골절이 오기도 하며 고깃집 불판 마개를 닫다가 돌연 생긴 요통으로 고생한 이도 있었다.
한의원 대기실에는 주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적였다.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귀에 익은 재즈곡 ‘자바 자이브’가 흘러나온다. ‘아이 러브 커피∼’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내 핸드폰 벨 소리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자다가도 들려오면 커피가 한 모금 마시고 싶어지는 곡이다. 특히 흑인 4인조 보컬이 부른 초창기 곡을 좋아하는데 엇박 당김음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강박과 약박을 이리저리 바꾸고 흔드는 기타 연주와 흑인 특유의 그루브한 비트와 싱커페이션 리듬을 반복적으로 듣노라니 내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게 된다.
하긴 재즈의 기원도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낯선 땅으로 이주해 온 흑인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며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해 불렀던 노동요가 재즈의 뿌리가 된 것이다. 거친 음색과 억센 억양과 열정적인 즉흥연주도 매혹적이지만, 무엇보다 기본 박자를 무시한 엇박 리듬이 재즈의 특징이다. 엇박자가 주어진 악곡을 위반하고 전복하고 당기고 밀어내듯이 흑인 이주민들 역시 백인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항거로 자유를 꿈꾸지 않았을까.
저항한다는 것은 규칙을 거부하고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되겠다. 재즈의 엇박 리듬과 국악의 엇모리장단과 여행지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춤의 엇박자 손뼉치기도 노예와 평민과 집시의 한이 서려 있는 은근한 뒤흔듦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오프비트들은 온비트들의 핍박을 받았거나 소외된 것들이리라. 노동 현장에서의 열사나 부당한 역사와 폭력에 투쟁하는 혁명가는 물론이거니와, 때 이르게 핀 산벚꽃도 안마당에서 키를 올려 흙담을 타고 넘는 능소화 줄기도 모두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려는 모험과 창조와 자유 의지가 담겼으리라. 그들은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용기를 내었고 패하거나 꺾이거나 폭삭 사그라질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던졌다. 고독한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들 덕에 평범한 자들은 편안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한의원에서 내린 진단은 골반 옆의 양쪽 천장관절에 손상을 입었다는 거였다. 재채기할 때 등골 주변의 근육과 인대에 무리가 가해졌다며, 젊은 의사는 모니터로 뼈의 위치를 확대하여 상세히 설명했다. 어쩌면 내 허리뼈도 쉴 새 없는 몸의 노동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충직했던 나의 뼈들이 고약한 주인의 눈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감행했으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잘 다독거려야 할 것이다. 약침과 벌침을 맞고 부항을 뜨고 전기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비딱해진 허리에게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르고 쓰다듬었다. 아마 한동안은 내 걸음도 엇박 리듬을 타겠지만, 그것이 내 삶의 틈이 되고 또 이음이 되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