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되고서야 연필로 쓰던 집 주소가 생각난다
맨땅에 쪼그리고 앉아서야 기웃한 의자가 보인다
떠나고 나서야 구석구석 묵은 멍들이 선명해진다
갈 길을 잃고서야 낡은 수첩 속 빽빽한 약속들이 생각난다
이방인이 되어서야 봉래산 할매바위를 기억한다
풍경이 낯설어지자 익숙해지는 귀신들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수평선이 있었다 돌아 나오는 흰 여울
그물을 깁던 가난한 마고들, 어깨마다 햇미역 수북하다
오래된 슬픔을 걸치고 아직도 키가 자라는 영도 봉래산
기슭마다 물고기들 퍼덕인다 시퍼런 비탈이 그물을 친다
낡은 뉴스 덜컹대는 산복도로 마을버스 안
홀로 되고서야 잎눈 돋는 곳곳이 고향이었음을 안다
-시집 〈뿌리주의자〉(2021) 중에서
영도는 바다의 용왕과 봉래산의 마고할미를 섬기는 신화의 섬입니다.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마고(麻姑). 영도가 고향인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세계를 바꾼다’는 뿌리 정신과 함께 최근 원도심에서 인문 정신을 나누어 온 〈백년어〉를 영도 신선동으로 옮기고 ‘신선시사(新仙詩社)’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신선들이 시를 읽으며 시대를 논하다”는 뜻이 담겨있답니다. 버려진 것이 새롭게 태어나고 잊힌 것이 다시 기억되는 읽고 쓰기, 그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함이랍니다. 이동은 새로운 생성의 땅을 만들어가기 위한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고향은 든든한 위로가 아닐는지요. 시를 통해 사고하고 실천하려는 이 움직임이 새로운 응시가 필요한 시대에 빛이 되어주길 바래봅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