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니까 ‘확’하고 시뻘건 불이 솟구치는데, 겁이 나서 몸이 굳었다.”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청 산불’이 발생한 시천면 내 점동마을에 거주하던 이정옥(78) 씨가 화재 당시 대피 상황을 회상했다. 23일 오전 산청군 단성면 단성중학교 임시대피소에서 만난 이 씨는 “밭일하다가 보니 저 멀리 뒷산에 연기가 나는 게 보여서 산에 불이 난 걸 알았다”며 “1~2시간 만에 우리 동네까지 불이 넘어오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불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 주민인 조철환(80) 씨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우리 동네를 삽시간에 연기로 뒤덮는데, 80(나이) 평생 산불로 집 놔두고 대피하는 건 처음”이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다 내팽개쳐 두고 아내 손잡고 도망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천면 덕산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 10여 명은 “두려운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가자는 대로 따르다 보니 지금 여기(대피소) 와 있다. 여기서 친구들 선배들 만나 조금 안심이 된다”고 했다.
21일 산청 시천면에서 시작된 산불로 인근 마을에 지내는 255세대, 347명이 임시대피소로 피난했다. 이들은 22일 선비문화연구원으로 대피했다가 불이 확산하자 더욱 안전한 지역으로 분산됐다.
이날 오전 7시 30분 기준 동의보감촌휴양림에 47명, 휴롬빌리지 70명, 단성중학교 100명, 단성초등학교 27명, 덕천강체험휴양림 59명, 산엔청복지관분관 30명, 단성당산마을 경로당 9명, 신안면 엘리제모텔 5명 등으로 나눠 피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피 인원이 가장 많은 단성중에는 체육관 내 가로세로 각 2m 정도의 정사각형 모양 천막이 35동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은 담요와 생수 등 필수 구호 물품을 받아 이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삼삼오오 모여 각 동네 근황을 묻는 모습이었다. 대부분 생기가 없이 침울한 표정이었으며 일부는 천막에서 멍하니 앉은 채로 취재진 질문에 “할 말 없다”며 복잡한 심정을 보였다.
지난 21일 오후 3시 20분께 발생한 산청 산불은 진화율 75%를 보이다가 확산하면서 이날 오전 9시 기준 30%로 떨어졌다. 23일 오전 7시 기준 피해 규모가 1329ha에 이르며 정부가 산청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주택·사찰 15채가 전소하고 산불 진화대원 4명이 사망, 중상자를 포함해 부상자도 6명이 나왔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