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김형주 감독 “‘승부’는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입력 : 2025-03-25 09:52:39 수정 : 2025-03-25 15: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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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봉 영화 ‘승부’ 메가폰
바둑 전설 조훈현·이창호 그려
부산역·부산외대 등에서 촬영
영화 개봉 기다리며 한층 성장

김형주 감독이 영화 ‘승부’로 관객을 찾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김형주 감독이 영화 ‘승부’로 관객을 찾는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부산 출신 김형주 감독이 영화 ‘승부’로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한국 바둑계 전설이자 사제 지간인 조훈현·이창호 국수의 바둑판 위 인생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감독은 겉보기엔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바둑판 위 대결을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살다 보면 희미해지는 여러 가치가 있는데 그 부분들을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김 감독이 ‘보안관’(2017년) 이후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부산 기장을 배경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풀었던 감독은 이번엔 부산역 부근과 부산외국어대 등에서 영화의 주요 장면을 찍었다. 대표적으로 극 중 한국기원 앞 관철동 거리는 부산 중구 중앙역 부근에서, 조 국수가 성냥을 쌓는 장면은 사상구의 한 다방에서 촬영했다. 조훈현, 이창호 국수가 사우나를 하는 장면은 금정구의 한 목욕탕에서 만들어지는 등 부산의 곳곳이 담겨 익숙한 장소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김 감독은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내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상경했다”며 “이번 작품도 부산에서 꽤 많은 장면을 찍었다”고 웃었다.

영화는 단순히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둑 대결이 아닌, 인물간 드라마를 함께 비춘다. 이병헌이 조훈현 국수를, 유아인이 이창호 국수를 연기했다. 성정이 ‘불같은’ 스승 조 국수와 ‘물 같은’ 제자가 오랜 시간 맺은 인간적인 관계는 영화의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이 국수가 처음으로 스승의 타이틀을 빼앗은 1990년 2월 최고위전(1959년 부산일보 창설 바둑 기전)은 영화의 백미다. 김 감독은 “대결이 벌어지고, 스승이 패하면서 서로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린 두 사람을 보여주다가 이를 극복하고 정상에 도전하는 스승의 모습을 잘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정상을 찍고 바닥으로 떨어지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조 국수는 다시 정상을 탈환해요. 조 국수가 실수를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도 있고요. 이 부분에 매료됐어요.”

영화 ‘승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바둑을 소재로 한만큼 두 사람의 바둑 대결은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한 소재다. 바둑판 위 백돌과 흑돌이 마치 한 판의 게임을 하듯 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는 영화의 속도감을 더해준다. 바둑을 아는 사람은 더 깊이 영화를 즐길 수 있고, 모르더라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김 감독을 비롯해 주연을 맡은 이병헌·유아인 모두 처음에 ‘바둑 문외한’이었다는 것. 감독은 “바둑 소재로 한 영화니 이걸 허투루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자료를 정말 많이 찾아봤고,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 바둑 기사가 현장에 상주했다”면서 “당시 대국 기보를 최대한 고증해서 쓰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바둑은 축구나 격투기처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결이 아니에요. 영화를 하다 보니 대국 후 ‘복기’가 참 흥미롭더라고요. 어떤 스포츠도 승자와 패자가 마주 앉아 끝난 경기를 다시 돌아보지 않잖아요. 품격이 느껴졌어요.”

영화 속 조 국수처럼 이 작품도 개봉을 앞두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로 촬영 이후 약 4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유아인은 이 작품에서 이창호 9단을 연기했지만, 이번 영화 홍보에는 함께하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은 “바닥에 떨어져서 몸부림치는 극 중 조훈현 국수를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며 “역시 견디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개봉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인생이 늘 좋을 수 없잖아요. 돌고 돌아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돼서 기뻐요. 몇 년 사이에 정신력이 강해진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기 전으로 돌아가도 저는 다시 한번 도전할 것 같아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제가 이 작품을 할 이유인 것 같습니다.(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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