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

입력 : 2025-03-30 17: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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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극단과 극단이 교차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식으로 표현하자면, 과학 기술이 눈부신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의 시대이자, 전 세계가 파괴와 살상 경쟁에 뛰어든 암흑의 시대이기도 했다. 유럽 대륙의 전쟁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번져 28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경제는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파국의 조짐도 드러냈다. 한쪽에서는 소비재와 식량이 썩어 가고 다른 쪽에서는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 와중에 인종주의, 노사 갈등, 전체주의의 망령이 고개를 쳐들었다. 1차 대전의 포화가 채 가시기도 전에 대공황의 공포가 휩쓸었고, 또 한 차례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1920~1930년대의 이야기다.

언론은 전 세계의 충격적인 뉴스를 매일매일 빠르게 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박하게 다가오는 이 모든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세계가 혼돈과 불확실성의 늪에 빠져버린 듯했다. 언론인들은 여전히 사건을 가능하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전달하는 직업 규범을 고수했지만, 이러한 감각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 관행에 뭔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업계 내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920년대 대공황·전쟁 불안·공포 확산

객관주의 한계 넘은 ‘해석 저널리즘’ 등장

트럼프 2기, 혼란 커져 ‘해설 뉴스’ 필요

전통 언론, 정파성 아닌 차별화 혁신해야

새로운 실험은 1920년대에 시작됐다. 1923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단순한 뉴스 전달이 아니라 사건에 관한 좀 더 분석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기사 양식을 선보였다. 이른바 ‘해석 저널리즘’(interpretive journalism)으로 불리게 된 보도 양식의 시작이었다. 해석 저널리즘은 이후 언론 전반에서 ‘해설 보도’라는 기사 양식으로 발전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시급한 시대적 과제를 간파한 언론의 혁신 조치로서 의미가 있었다.

해석 저널리즘은 구체적인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의 배후, 맥락, 효과 등의 분석에 초점을 둔다. 이는 사건의 맥락 파악을 통해 복잡한 이슈를 발굴하거나, 여러 사건과 사례를 관통하는 패턴과 추이를 발견하며, 기존의 통념과 편견을 수정하고 주변적인 목소리를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경제에 관한 기존의 통념을 모두 부정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국가 경제를 위해 높은 관세라는 보호막이 필요하고 개개인에게는 절약과 저축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상식이 지배하던 시대에, 대규모 소비를 통한 수요 창출이라는 새로운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언론은 해설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했다.

해석 저널리즘이 언론의 호응을 얻게 된 데는 외적 환경 뿐 아니라 언론계 내부의 변화라는 맥락도 작용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신문은 언론의 기능을 독점했다. 하지만 신생 매체인 라디오는 속보성을 무기로 신문의 위상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1933년에는 신문업계가 라디오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라디오와 차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절실했고, 해설 보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자구책이기도 했다.

역사는 똑같은 형태로는 아니지만 되풀이되기도 한다. 최근 국내외 정세나 미디어 업계의 동황을 보면 자연스레 100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우리가 알던 국제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미국이 유럽이나 기존의 동맹국과 등을 돌리고 우방 국가의 영토에 노골적으로 군침을 흘리는 야만의 시대가 부활했다. 높은 관세를 무기로 삼는 새로운 보호주의의 등장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 이미 그물처럼 얽힌 세계 경제 질서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다. 정보와 뉴스 홍수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속속들이 알게 됐는데도 오히려 알 수 없는 혼란과 불안감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처럼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면, 이는 결국 전통적 언론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해석 저널리즘은 서구에서는 거의 100년 전에 등장했지만, 지금처럼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여전히 시민들의 갈증을 채워 줄 유효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한가한 딴 나라 이야기로만 여기기에는, 국내외 뉴스 지형이 언론 매체들에게 너무나 불길하게 변해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를 보면, 뉴스 매체로서 신문과 방송의 위상은 크게 하락했고, 전반적인 뉴스 소비도 감소하고 있다. 공짜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는데 굳이 별 차별성도 없는 전통 매체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이용자들의 영리한 판단을 탓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국내 언론 매체도 정파성이라는 근시안적 전략이 아니라 진정한 차별화와 혁신이 필요해졌다. 100년 전에도 그랬듯이, 혁신은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언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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