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노총-한노총, 울산서 2000여 명 규모 집단 충돌

입력 : 2025-04-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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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에스오일 온산공장 앞에
민노총·한노총 동시 집회 벌이다
조합원 2000여 명 집단 몸싸움
경찰 허술한 집회관리 '도마위'

지난 11일 울산시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 동문 일대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플랜트건설노조가 동시에 집회를 열다가 극심한 물리적 마찰을 빚었다. 독자 제공 지난 11일 울산시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 동문 일대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플랜트건설노조가 동시에 집회를 열다가 극심한 물리적 마찰을 빚었다. 독자 제공

울산에서 경쟁 관계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플랜트노조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대규모 ‘동시 집회’를 하다가 집단으로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한노총 노동자가 다치는 등 인명 피해도 있었다. ‘노-노 충돌’이 불 보듯 뻔한 데도 동시 집회를 거르지 못한 경찰의 미숙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13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1일 오전 5시 30분께 울산시 울주군 에쓰오일 온산공장 동문 앞에서 차도를 사이에 두고 민노총과 한노총 플랜트 노조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동문을 마주하고 왼편에선 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200~250명이 올해 임단협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 사이 오른편에선 한국노총 전국건설노조 울산본부 100여 명이 노조 선전전을 진행했다.

울산 플랜트건설업계에서는 양대 노총의 세 불리기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업계 최대 규모인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현장은 이들 노조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한데 1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집단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두 노조가 동시에 집회를 여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집회에 참석한 한 플랜트 건설노동자는 “집회 장소에 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두 노조가 동시에 집회를 여는 건 처음 봤다. 오늘 일 한 번 나겠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우려한 대로 민노총과 한노총 노조는 집회 현장에서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날 선 반응을 드러냈다. 노조원들은 집회 초기부터 정해진 집회 장소를 벗어나 서로 몸싸움을 벌였다. 이를 중재하던 경찰과도 격렬하게 부딪쳤다.

경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도로에 접이식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력 200~300명을 투입했지만, 흥분한 조합원들을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민노총 노조가 조합원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집회대오가 1500~2000명까지 순식간에 불어났고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며 실력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집회 내내 ‘집회 장소를 이탈하지 마라’, ‘자진 해산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 방송을 내보냈으나 통하지 않았다. 민노총과 한노총 조합원, 경찰 경력까지 줄잡아 2000~2500명에 달하는 인력이 에쓰오일 동문 곳곳에서 충돌했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현장은 오전 8시 30분께 양측 노조가 해산하면서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한노총 조합원 7명이 전치 2~3주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노조의 폭력 행위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지역 플랜트업계에서는 또 한 번 발생한 노노 폭력 사태와 관련해 경찰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이번 사태를 놓고 경찰이 노노, 노경 충돌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 자주 폭력사태를 빚은 두 노조의 관계를 고려해 동시 집회가 열리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는 것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관할경찰서장은 집회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서로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해 개최하도록 권유하고, 이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뒤에 접수된 집회에 대해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노조 간 극심한 마찰과 집단 폭력사태 등이 우려된다며 집회 하루 전인 지난 10일에야 두 노조에 동일 장소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옥외집회 제한 통고서’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노총은 지난달 중순, 민노총은 지난달 말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사실상 경찰이 때늦은 대응으로 노노 충돌 여지를 남기고 결국엔 사후 통제마저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신고를 받을 당시 당사자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게 맞고, 노조 간 충돌을 우려해 집회 제한 통고도 했다”며 “노조 집행부와 연락 책임자 등에게 안정적인 질서 유지에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적극 요청했으나 결과적으로 불법 시위로 변질돼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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