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가 얼마나 모여야
꿀이 되는가 나는
생의 도감圖鑑 같은
두툼한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밀봉된 전철 안
손잡이에 매달려
겨우 흔들리면서
꽃 찾아 강을 건너간다
세상의 꽃은 모두
벌들의 거래처, 나는
두엄에 핀 민들레와 인사하다
똥무더기를 밟기도 하고
잘못 든 건물
유리창을 들이받다
쫓겨나기도 한다
아주 쓸쓸한 날에는
분가루를 입술에 묻힌 채
유곽을 헤매기도 하지만,
모든 씁쓸한 맛이
더해진 꿀맛은 그래서
달콤하다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2009) 중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꿈꾸는 삶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분투하는 샐러리맨, 세일즈맨들이 꽃 찾아 강을 건넙니다. 일자리가 줄어 대졸 백수가 400만이 넘는 우리의 현실. 향기 없는 꽃은 꽃이 아니라는데 봄이 봄 아닌 것 같고, 꽃이 꽃 아닌 것 같고, 청춘이 청춘 아닌 것만 같습니다. 취업 전쟁, 스펙 전쟁의 시대에 꽃가루를 얼마나 모아야 꿀이 될 수 있겠느냐 묻는 시인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꽃들은 한창인데 붕붕거리며 꽃을 찾아야 할 벌과 나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많은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생태파수꾼인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는 말이 있던데, 달콤한 생은 얼마나 씁쓸한 절망을 딛고 일어선 꽃일까요.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