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탈락’ 거제 국가정원 백지화냐, 재추진이냐

입력 : 2025-05-01 13:23:51 수정 : 2025-05-02 0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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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예산 1986억 원 투입
경제성·정책성 지표 낙제점
국가 조성·관리 첫 사례 부담
시 “예타 결과 분석해 재추진”

한·아세안 국가정원 조감도. 부산일보DB 한·아세안 국가정원 조감도. 부산일보DB

경남 거제시가 관광객 1000만 시대 개막 마중물로 추진한 한·아세안 국가정원 조성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부산일보 5월 1일 자 11면 보도)해 물거품 될 위기에 처했다.

거제시는 주무 부처인 산림청, 상급기관인 경남도와 예타 결과를 분석해 재도전한다는 각오다. 그러나 이미 예타 대상 선정 과정에 계획이 대폭 조정된 데다, 줄곧 지적돼 온 사업 당위성과 경제성 한계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일 거제시에 따르면 전날 열린 기재부 ‘2025년 제4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한·아세안 국가정원 예타 결과 안건이 부결됐다.

예타는 대규모 국가예산(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고 300억 원 이상 신규사업)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기재부가 사업 타당성을 객관적, 중립적 기준에 따라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화를 방지하고 재정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경제성, 정책성, 기술성, 지역균형발전을 기준으로 평가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통상 경제성 지표인 B/C(비용대비편익)와 정책성·지역균형 등을 반영한 AHP(정성적 타당성)가 각각 0.7과 0.5 이상이어야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

한·아세안 국가정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타를 진행했는데, 두 지표 모두 이를 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책성 점수가 낙제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정책성은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관성이 있는지, 국민 정서나 인식에 부합하는지가 관건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아직 기재부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면서도 “전반적으로 평가 점수가 낮은 듯하다”고 귀띔했다.

한·아세안 국가정원이 들어설 거제시 동부면 산촌간척지. 부산일보DB 한·아세안 국가정원이 들어설 거제시 동부면 산촌간척지. 부산일보DB

한·아세안 국가정원은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공동의장 성명’에서 채택된 산림관리 협력 방안 중 하나다. 산림청은 2020년 국립난대수목원 유치 경쟁에서 밀린 거제에 이를 대체 사업으로 제안했다. 거제시는 남부내륙철도, 가덕신공항과 연계할 새로운 관광산업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거제시가 추천한 후보지 중 동부면 산촌간척지 일원을 대상지로 낙점한 산림청은 2022년 12월 ‘타당성 조사 및 기본구상 용역’까지 완료하고 2023년 2월 예타를 신청했다. 조성 면적은 64만 3000㎡, 사업비는 최소 2900억 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이를 토대로 2024년 기본계획을 수립해 2025년 실시설계를 마친 뒤 이듬해 상반기 첫 삽을 뜨기로 했다.

하지만 기재부에 발목이 잡혔다. 기재부는 산림청 밑그림이 너무 부실하다며 예타 요구서를 반려했다. 막대한 정부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국비 지원 당위성과 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획대로라면 전남 순천만, 울산 태화강을 잇는 3호 국가정원이 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조성·운영하다 승격된 두 곳과 달리 조성·운영·관리까지 모든 과정과 예산을 국가가 전담하는 첫 사례라는 점도 부담이 됐다. 이를 계기로 다른 지자체에서도 조성 요구가 잇따를 수 있어서다.

지난 11일 국회를 방문한 변광용 거제시장(왼쪽)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국가정원 조성 당위성과 추진 의지, 시민 염원 등을 전달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부산일보DB 지난 11일 국회를 방문한 변광용 거제시장(왼쪽)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국가정원 조성 당위성과 추진 의지, 시민 염원 등을 전달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부산일보DB

이 같은 이유로 국가정원은 결국 예타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다급해진 경남도와 거제시는 조성 면적과 사업비를 각각 40만 4000㎡, 1986억 원으로 줄인 수정안을 제시했다. 산림청은 여기에 지방 정부 재원 분담 방안 등을 담아 재심사를 요청, 2023년 10월 가까스로 예타 대상에 포함됐다.

통상 예타 기간은 10개월 남짓이다. 때문에 대상 선정 당시 만해도 작년 7월 중엔 통과 여부가 나올 것으로 봤다. 이후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면 2026년 하반기엔 착공해 2030년 이전 완공도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정책성 평가에 필요한 국민 설문조사가 지연된다는 이유로 최근까지 하세월 했다.

‘예타 탈락 징후’를 감지한 거제시와 지역 정치권은 주무 부처와 국회 등을 오가며 반전을 노렸지만 역부족. 조사 착수 1년 5개월 만인 지난 21일 KDI 주관 ‘재정사업평가 분과위원회’가 열렸고, 이날 ‘타당성 부족’ 의견이 담긴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거제시는 사업 포기는 없다는 입장이다. 변광용 시장은 “시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된 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향후 산림청, 경남도와 함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추진방향을 적극 모색해 나가겠다”며 재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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