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국면, 부울경을 중심으로 북극항로가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추진력 없이 지역이나 정부 부처 차원 대응에 그치다가는 주변국에 북극항로의 수혜를 모두 빼앗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부산항이 갖는 세계 2위 환적항의 입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경고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은정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전략보고서 ‘패권 경쟁 요충지로서의 북극:트럼프 2기 미국의 북극 전략’에서 북극이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패권 경쟁터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알래스카 천연가스전 개발을 서두르는 것을 조 위원은 그 예로 꼽았다. 반면 북극해에서 가장 많은 해역을 영해로 둔 러시아는 언제든지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통항을 막을 가능성이 있고, 북극 통합군 창설에 이어 알래스카와 가까운 북극에서 군사훈련을 확대한 바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은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대응해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북극사령부 창설을 논의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조 위원은 “북극이 아시아, 유럽, 미주를 잇는 대륙 간 최단거리 물류 통로이자, 자원의 보고로 주목받으면서 주요 패권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군사 요충지인 북극항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북극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을 기회로 포착하고, 국가 차원의 세밀한 북극전략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북극이 단순한 해상운송 루트가 아니라 군사·자원·외교적 중요성이 큰 복합적 요충지로 떠오르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북극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해운시장에서는 중국에서 미주로 향하는 수출 물량이 세계 물동량의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화주인 중국이 북극항로를 두고도 자국 화물 운송에 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은 최근 러시아와의 정상 회담 이후 나온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8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러시아 전승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0개 항으로 이뤄진 성명에서 ‘북극 항로의 상호 이익 협력을 강화’(제3항)하고, ‘양국 모두 북극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해당 지역의 군사적·정치적 긴장을 예방한다’(제10항)고 2개 조항에서 북극항로를 언급했다. 표현은 점잖고 내용은 포괄적이지만 북극해의 주도권을 쥔 러시아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지난 13일 중국석유뉴스센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앞선 4월 30일 ‘에너지협력로드맵’에 서명해 올해 ‘북극LNG-3’ 프로젝트 건설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 신문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북극항로 개발은 에너지 수송 시간을 단축하고 기존 항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정보에 밝은 한 소식통은 “중국이 북극항로 시대 아시아의 모항을 상하이항으로 지정하고, 싱가포르 등 화교 자본 영향력이 큰 항만의 물동량을 상하이로 집중시키려고 계획 중”이라며 “일본도 이런 움직임을 간파하고, 홋카이도 하코다테항을 기항지로 삼아 물동량 일부를 분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내에서는 북극항로 시대가 오면 부산이 막연히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동향이 녹록하지 않다”며 “상하이와 하코다테 사이에서 부산항이 지금보다 오히려 소외될 가능성도 크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기민하게 전략을 세워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