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트럼프, 왜 하버드 때리나?

입력 : 2025-05-3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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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집권하면서 대학 진보 색채 지우기
연방 지원금 철회·외국 유학생 제한 시도
좌파 엘리트 상징 굴복시켜 타 대학 압박

반유대주의 척결 이면엔 보수 이념 강화
관세 정책 부작용 지지율 하락 반전 공세
대학 압박 조치, 혁신·경쟁력 약화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아이비리그 명문대인 하버드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2일(현지 시간) 하버드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는 초강수를 뒀다. 하버드대가 ‘반(反)유대주의 근절’ 등 정부의 교육 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도 “국토안보부의 외국인 학생 차단은 불법”이라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 초일류 대학 하버드는 왜 전면전을 벌이는 걸까.


27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금지한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금지한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트럼프, 하버드에 공세 강화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의 갈등은 2023년 10월 이후 미국 대학가를 휩쓴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대처를 둘러싼 입장 차이에서 촉발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캠퍼스 내 유대인 혐오 근절 등을 이유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를 비롯해 입학정책과 교수진 채용에 정부가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하버드대에 요구했다. 하버드대는 ‘학문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보조금 동결·삭감, 대학 면세 혜택 취소 등 돈줄을 옥죄기 시작했고 지난 22일(현지 시간)에는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인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취소하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하버드대는 다음 날 학생 비자 취소 등 정부의 조치 이행을 막아달라는 가처분소송을 냈고, 연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에 “반유대주의적인 하버드대에서 30억 달러(약 4조 1000억 원)의 보조금을 회수해 미국 전역의 직업 학교들에 나눠주려 한다”며 ‘하버드 때리기’를 재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뿐 아니라 컬럼비아대, 펜실베이니아대, 코넬대 등 다른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에 대해서도 연방 지원금을 철회하는 등 교육기관 전반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단속’이라는 명분 이면에 이들 대학의 진보색과 불온성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버드 대학교 동문 3000명이 지난 27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사진은 정문 앞에서 하버드대를 응원하는 시민. AFP연합뉴스 하버드 대학교 동문 3000명이 지난 27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사진은 정문 앞에서 하버드대를 응원하는 시민. AFP연합뉴스

■ 하버드는 왜 타깃이 됐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미국 명문 대학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연방 지원금을 무기로 대학의 ‘진보적 색채 지우기’에 나섰는데, 이제 화력을 하버드에 집중하고 있다. 하버드가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연방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까지 제기한 첫 번째 대학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이 펼쳐 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이나 학내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빌미로 여러 대학을 탄압했다. 콜롬비아 대학 등 다른 명문대들은 일부 요구를 수용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하버드는 강경하게 맞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를 ‘본보기’ 삼아 굴복시키거나 법적 분쟁에서 승리할 경우, 다른 대학들에도 강력한 선례와 압박 효과를 줄 수 있다.

원래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하버드를 비롯해 컬럼비아대, 코넬대, 프린스턴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진보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한다. 그 가운데 하버드는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부유하며 ‘좌파 엘리트’ 상징의 핵심 대학이다. 하버드가 반기를 들자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정부 요구를 거부하고 예일·스탠퍼드대 등이 연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하버드를 굴복시켜야 대학과의 대결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2023년 폐지됨)과 진보적 편향성을 뜯어고치기 위한 광범위한 정치적·법적 전략의 일환으로 하버드를 비롯한 엘리트 학교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단순히 대학 내 반유대주의 척결이 아닌, 보수 정치 이념을 사회 전반적으로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하버드대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세 정책의 부작용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진보 엘리트를 향한 공세를 강화하던 중 하버드대가 타깃으로 떠오른 것이다.


28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 교직원, 가족들이 하버드 야드에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 28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 교직원, 가족들이 하버드 야드에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

■ 하버드, 진보 정책 브레인 센터

하버드는 1636년 설립된 미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미 건국보다 140년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등 8명의 미 대통령을 배출한 최고 명문이다. 특히 진보 정책의 브레인 센터 역할을 맡아 ‘좌파의 본산’으로 불린다. 1960~1970년대 베트남 전쟁 때 반전 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하버드는 지난해 기준 532억 달러(약 76조 원) 기금을 보유한,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대학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로 면세 혜택이 박탈되면 수십억 달러 손실과 함께 부유층 기부까지 줄어드는 연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2024~2025학년도 기준 국제 오피스 통계에 따르면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전체 학생의 27.2%인 6793명이다. 한국인 유학생도 400여 명 재학 중이다. 하버드는 지난해 10월 유학생 출신 국가를 공개했다. 중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았고, 이어 캐나다, 인도, 한국, 영국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대하는 집회 후, 하버드대를 상징하는 존 하버드 동상 앞에 시위자들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대하는 집회 후, 하버드대를 상징하는 존 하버드 동상 앞에 시위자들이 서 있다. AFP연합뉴스

■ 보수와 진보의 ‘문화 전쟁’

하버드를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반유대주의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상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로 대표되는 진보적 노선의 폐기를 요구하는 ‘문화전쟁’의 성격이 짙다는 시각이 많다. 다른 주요 엘리트 대학이 갖는 위기감의 본질이기도 하다. DEI 정책은 인종·젠더·민족 등 정체성을 차별하지 않고 사회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반차별 정책의 성과다. DEI는 원래 차별 해소와 통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구호였다.

DEI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은 치열하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DEI를 정책으로 채택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DEI는 민주당 정부를 거치며 정부와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화됐다. 그 과정에서 절차의 일방성과 내용의 편향성에 보수층이 반발했고, 트럼프 정부가 이번에 전면 백지화에 나섰다. 트럼프와 지지층들은 DEI 정책이 인종·젠더·민족 정체성에 바탕을 둔 차별로 본다. 그들은 채용이나 입학 등에서 인종 등을 배려해, 능력 있는 백인이 오히려 차별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4년 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이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유다.

하버드가 DEI 격전지가 될 조짐은 2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대법원은 2023년 인종별 쿼터를 둔 하버드의 소수계 우대 입학 사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당시 DEI 진영이 크게 반발했는데, 그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벌어진 반이스라엘 시위도 영향을 줬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전쟁을 인종차별의 연장선이라고 비난했다. 과격한 인종차별 구호가 난무하는데도 당시 클로딘 게이 총장이 미온적 반응을 보였고, 이에 보수층이 격앙했다.


미 국무부가 전 세계 외교 공관에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일시 중단할 것을 지시한 가운데 28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 국무부가 전 세계 외교 공관에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일시 중단할 것을 지시한 가운데 28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미 유학생 비자 인터뷰 중단 파장도

트럼프 행정부와 대학과의 전쟁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외국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27일(현지 시간) 비자 발급 인터뷰에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심사를 의무화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일시 중단할 것을 전 세계 공관에 지시했다. 미 정부가 반유대주의 척결, 테러리스트 차단을 명분으로 미국에 유학 오려는 학생을 대상으로 사실상 ‘사상 검증’ 논란이 제기된다. 미국에 가려는 각국의 유학 신청자들에 대한 SNS 심사의 실효성 문제와 함께 비자 발급에 장기간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칙 개정에 저항하는 하버드대 등에 재정적 타격을 주려는 의도로 유학생의 입국을 일시 차단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폴리티코도 “행정부가 이 계획을 시행하면 학생 비자 처리 속도가 심각하게 느려질 수 있다”며 “또한 외국인 학생에 크게 의존해 재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많은 대학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 대학 가운데 외국 국적 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는 뉴욕대(NYU)로 27만 2000명이 재학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노스이스턴대(21만 명), 컬럼비아대(20만 3000명), 애리조나주립대(18만 4000명), 서던캘리포니아대(USC·17만 5000명) 순이었다. 현재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은 4만여 명에 달한다.

미국 교육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학생 비자 인터뷰 일시 중지 조치가 대학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국제교육자협회(NAFSA)는 2023~2024학년도 100만 명이 넘는 유학생이 미국 경제에 약 440억 달러(61조 6000억 원)의 기여를 한 것으로 추정했다.


■ 트럼프발 ‘대학과의 전쟁’ 향방은?

그동안 초강대국 미국의 경쟁력 중의 하나는 자유롭고 혁신적인 대학이었다. 대학이 자율과 독립의 원칙에 따라 전 세계 인재가 모여들어 세상을 선도하는 혁신을 이뤄내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높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과학·기술·수학(STEM) 분야에 집중된 유학생 유입은 미국의 기술 혁신과 경쟁력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를 위한 압박 조치가 오히려 자국의 성장 동력 저하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독단적 정책이 미국 대학을 위기로 내모는 셈이다. 외국인 유학생 확보에 타격을 입고, 보조금 등 정부 의존도가 높은 대학들이 트럼프의 파상 공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고 권력과 최고 지성 간의 정면충돌의 향방이 미국과 세계의 미래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당분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훈 논설위원 김상훈 논설위원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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