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Come Together!

입력 : 2025-05-29 17: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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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큐레이터

문화다양성 주간 시민 인식·참여 부족
예술로 치유하고 소통하는 제도 마련을
문화정책 강화해 국민 치유·회복 나서야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10대 정책 공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후보자의 국가관,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경제, 민생, 사회복지, 외교, 국방, 안보, 지역 균형발전 등 주요 정책이 망라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문화정책 이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지자체 선거 때에도 문화정책은 ‘단골 메뉴’인데 하물며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어느 정당 하나 제대로 된 공약을 제시한 바가 없다. 내란의 내상이 심해서인가! 그렇다면 문화정책을 더욱 강화해 혼돈의 사회에서 국민의 치유와 회복에 더욱 절실히 나서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정한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기본적 인권, 경제, 사회적 권리 외에 제27조항에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을 ‘사회 혹은 사회적 집단의 지적, 감성적, 윤리적, 정신적 생활의 총체’로 정의했다. 문화다양성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독창성을 유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중요한 전제임을 확인하고,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문화다원주의 정책을 강조한다. 올해는 문화다양성 유네스코 선언 20주년을 맞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매년 5월 21일(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부터 1주일간 문화 다양성 주간을 설정해 대국민 캠페인을 11년째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는 부산, 전북, 전남문화재단이 지역 중심으로 협력해 진행한다. 타 시도와 비교한다면 부산문화재단은 평소 문화다양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다문화를 넘어 예술 치유와 포용적 실천, 그리고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예술적 시도는 앞서가고 있다. 다만, 일련의 활동들이 시민 사회 속으로 스며들며 온도를 같이하는지는 의문이다. 현장의 힘을 믿고 민간 영역과 협력해야 하는데, 기관과 관계자 중심의 행사에 치중해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가 부족한 실정이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문화는 단순히 국가가 주도하는 하달식의 지원 정책을 넘어서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문 예술가의 계승 발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자율성, 문화 다양성, 포용성 그리고 차별 없는 시선과 관점으로 재정립되고, 단순 복지의 개념에서 더 확장되어야 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정책의 방향과 시대적 요구는 창의적 창제작의 환경을 넘어 예술가·비예술가 구분 없는 예술로 치유하고 예술로 소통하는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아동, 초고령, 장애, 복지, 의료, 돌봄 등은 앞으로의 사회가 동행해야 할 분야다. 그 가운데 돌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초고령사회의 대표적 도시이다. 사실 아이들부터 고령인구까지 많은 사람은 이미 예술로 ‘돌봄’을 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체계화해 어떻게 ‘돌봄의 문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고립’과 ‘고독’이라는 현실 앞에 문화적 안전망을 만들 수 있다. 언제까지 복지에만 맡길 것인가. 예술에 대한 존중과 예술가와의 동반 성장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그간 예술인을 대상으로 수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힘들고 공공 의존도만 높을 뿐이다. 이를 어떻게 풀지가 숙제다.

‘다시 현장에 다가가는 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 불평등, 인구 및 지역 소멸, AI 발전, 젠더·세대 갈등과 혐오, 미디어 환경 변화 등 급변하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극한 강도로 찾아오고, 한반도를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21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지구상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 도시의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의 바로미터다.

며칠 뒤면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다.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대선을 준비하느라 공약은 그랬다고 칩시다. 함께 나은 세상으로 갈 때는 단디 챙겨 보입시다.” 문화! 대단하게 우아하거나 세계적일 필요는 없다. 두 정부가 후퇴시킨 문화정책을 반드시 다시 돌려놓는 게 먼저다. 적재적소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그 무엇보다 옳다. 그것이 시작이다.

비틀스 노래 ‘Come Together’가 떠오른다. ‘그가 말했어./난 너를 알고, 넌 나를 알지.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함께 모여! 지금 당장, 나를 넘어서…’ 이 노래는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캠페인 노래로 만들어졌다가, 비틀스의 히트곡이 되었다. 비틀스가 해체되기 직전에 만들어진 곡으로 그들의 음악적 진화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분열된 사회에 대한 통합’의 메시지와 멤버 간의 갈등이 교차 되는 아이러니한 곡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꼭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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