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부산 도심의 한 산 등산로에서 수년째 일부 주민들이 공터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골프를 쳐 등산객들이 불편을 호소한다. 하지만 구청은 이들이 조성한 간이 골프 시설을 철거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일 부산 부산진구청에 따르면 부산진구 엄광산 중턱에서 노인들이 바닥에 인조 잔디를 깔고 골프를 치고 있다는 민원이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차례 접수됐다.
해당 구역은 과거 ‘고원’이라는 명칭의 약수터가 있던 곳으로, 몇 해 전 수질 문제로 폐쇄된 이후 공터로 남았다. 바로 옆에는 운동 기구가 있고 산책로와도 접해 있어 등산객들의 왕래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노인들이 인조 잔디를 깔고 공간을 차지하면서 이곳을 지나다니거나 이곳에 쉬어 가던 등산객들도 피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휘두르는 골프채나 날아오는 골프공에 맞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노인들이 골프를 치기 시작한 것은 6년 전부터다. 노인들은 ‘고원회’라는 모임을 결성한 뒤 공터 바닥에 인조 잔디를 깔고 나무 사이에 그물을 매달아 매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고 있다.
현재 모임의 회원 수는 13명으로 대부분 엄광산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이다. 공터 인근에는 골프채 등 이들의 장비를 보관하는 임시 건물도 있다.
관할 지자체는 난감한 상황이다. 구청은 시설물 철거와 골프 연습 중단을 요구하는 지속적인 민원에 최근까지 수차례 현장을 방문해 노인들에게 자진 철거를 요청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노인들은 전체 인조 잔디 중 일부만을 철거한 채 ‘버티기’에 나섰다.
노인들은 인공잔디 등 관련 시설을 자진해서 철거할 의사가 없고 계속 이곳에서 골프를 치겠다는 계획이다. 오히려 도심에 노인들을 위한 여가 시설이 없다 보니 벌어진 일이니 구청에서 노인 복지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임을 이끄는 최 모(88) 씨는 “이곳을 쓰고 싶은 다른 등산객이나 인근 유료 골프 연습장에서 악의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 같다”며 “특별히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인적 드문 산속에서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가꾼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구청의 단속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지만, 구청은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령으로 경범죄 처벌법이 있지만 사람이 공에 맞는 등 실제 피해가 없으면 최대 1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게 전부다. 2021년 공원과 해수욕장 등지에서 골프 연습을 금지하는 ‘무단 골프 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구청은 우선 노인들이 자진해서 시설물을 철거하고 산에서 골프를 치지 않도록 최대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부산진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모두에게 개방된 장소를 특정인들이 독점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만큼 대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