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환경단체가 ‘사고관리계획서’가 빠진 고리원전 2호기(부산 기장군 장안읍 소재)에 대한 설계수명 연장 심사는 불법이라며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졸속심사 중단 및 중대사고 안전성 평가를 위한 사고관리계획서 우선 심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환경운동연합과 탈핵부산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은 11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앞에서 고리2호기 수명연장 졸속심사 중단과 사고관리계획서 우선 심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중대사고를 포함해서 제대로 심의를 해달라’는 고리 2호기 방사선비상계획 구역 인접 지역 주민들의 서명을 모아 원안위에 제출했다.
원안위 자료 중 계속운전 심사 현황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심사를 이달까지 완료할 계획이지만,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는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중대사고 안정성 평가를 위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안전법 제20조 2항에 의거해 사고관리계획서는 제출과 심사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고리 2호기의 사고관리계획서는 2019년 제출됐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사회에 나선 환경운동연합 유에스더 에너지기후팀 활동가는 “고리 2호기를 필두로 원전 10기에 대한 수명연장 심사가 원안위에서 진행 중”이라며 “노후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이 높은 가운데,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가 최소한의 절차적 안전을 담보하지 않고 졸속 심의되고 있는 상황을 규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밝혔다.
현재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에 대한 수명연장 심사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심사에서 절차와 법, 안전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진다면, 이후의 모든 원전 수명연장 심사에도 동일한 부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사무총장은 “고리 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공청회 당시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안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했고, 가장 중요한 중대사고 관련 부분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며 “정작 수명연장 심사 과정에서는 사고관리계획서가 수명연장 심사와 무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9년에 제출된 사고관리계획서를 보려고 해도, 영업비밀을 이유로 다 가림처리함으로써 무슨 내용인지 알수도 없게 공개해놨다”며 원자력 안전이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짚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탈핵부산시민연대 박상현 공동집행위원장은 “고리 2호기는 사실상 첫 번째로 수명연장 과정에서 중대사고를 평가해야되는 핵발전소임(원전)에도 원자력 안전법, 지침 등의 허점을 이용해 중대사고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최경숙 에너지기후팀 팀장은 “원안위가 한수원의 편의를 위해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를 미뤄두는 법 위반과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한수원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시민안전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자회견 직후 참석자들은 탈핵부산시민연대 이흥만 공동대표 외 547명 신청인의 ‘중대사고관리계획 포함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심의·의결 신청서’를 원안위에 제출했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2023년 4월 8일 설계수명을 다하고 가동을 중단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영구정지가 예정됐던 고리 2호기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따라 현재 수명연장이 추진 중이다. KINS는 이달 중 수명연장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마칠 계획으로, 이 결과를 토대로 원안위는 수명연장 심의를 최종 결정한다. 문제는 중대사고 관리의 핵심인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심의가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