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알고 있는 요가가 아니었다. 아로마(향) 덕분에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어졌다. 풍선으로 서로의 기운을 주고 받으면서 힘을 얻었다. 동작이 바뀔 때마다 느낀 점을 공유했다. 낯선 이들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 줄이야. 요가가 끝난 뒤엔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을 마무리했다. 인터뷰차 방문했다가 졸지에 참여하게 된 수업은 잠시나마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줬다. 부산의료원 양·한방 예술 융합 통합 치료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인 통합예술치유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로마 힐링 요가다.
다양한 예술 영역을 결합해 심신을 치유하는 ‘통합예술치유’가 뜨고 있다. 통합예술치유는 음악, 미술, 무용 등 2개 이상의 예술을 매개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심신을 안정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특히 요가 등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접목한 예술치유는 몸짓을 토대로 ‘나’를 발견하고 전문가와 참여자가 적극 소통하며 예술을 매개로 함께 치유의 길을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시선을 모은다.
“움직임을 통한 예술치유는 신체 몸짓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자 삶을 바꾸는 실천입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통합예술치유의 실질적인 주춧돌을 마련한 부산대 일반대학원 통합예술치료학과 김정향 겸임교수의 일성이다. 센터의 시범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김 교수는 부산대 박은화 무용학과 명예교수의 권유로 2000년대 무용치료에 발을 디딘 뒤 2016년 부산대에서 교양과목 ‘몸과 자아를 찾는 여행’을 개설하고 2020년 부산대 일반대학원 통합예술치료학과를 신설하는 등 예술치유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다.
20년 넘게 시민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예술치유 작업을 해 온 그는 춤(몸짓)이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건강 개념으로 들여다보면 ‘치유의 시작점’이 된다고 강조했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안정과 행복을 강조하는데 이는 예술치유가 타인을 지지하고 공감하는 관계 형성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부산의료원의 시범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다는 간호부 권자은(50) 씨는 주변에 프로그램 참여를 권할 만큼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아로마와 그림, 움직임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는 등 일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시간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공식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가족에게도 권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부 정영회(58) 씨는 이번처럼 다양한 치유 기법이 함께 어우러진 방식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업무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고, 잘 몰랐던 직장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
모든 게 새로워서 처음엔 다소 부담스러웠다는 전문의 박성수(46) 씨는 “스트레스 회복에 큰 도움이 됐고 점차 익숙해지면서 약속이 있는 날에도 수업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다”고 강조했다.움직임을 통한 예술치유가 새로운 회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의료원 시범 프로그램과 부산문화재단 예술치유활동 ‘일상을 담다’에도 참여한 하정화 강사는 ‘예술치유 촉진자’를 자처했다. 그는 약물이 외부 자극이라면, 예술치유는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복지관, 학교 현장을 오가며 생활 속 예술을 실현한다는 그는 “일상의 손짓, 걸음도 하나의 몸짓이며 모든 일상적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참여자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이들이 알아차리도록 도우면서 스스로 발전하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번 시범 프로그램은 오는 9월 일반 시민에게 정식 개방된다. 9월 1일부터 12주 과정으로 이뤄진다. 아로마 힐링 요가를 비롯해 꽃차·약선차 소믈리에, 싱잉볼 몸챙김명상, 현대무용 바 트레이닝, 바디 밸런스, 성인들을 위한 취미미술, 음악으로 만나는 소마, 한국무용, 바른자세 소도구 필라테스 등 9개 강좌로 구성된다.
움직임을 통한 예술치유는 일반인은 물론 환자에게 효과가 더욱 크다. 부산문화재단이 지난해 다움병원, 좋은부산요양병원과 협력해 암·정신병동 환자 55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사회적 예술치유 프로젝트Ⅱ: 마음을 담다’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치유 활동 후 “기분이 좋아진다”는 응답은 94.1%에 달했다. 응답자의 85.2%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답했으며,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도 83.4%를 기록했다.
프로그램 만족도는 100%가 ‘만족’ 이상을 표시했으며, 향후 참여 의향에서도 응답자 96.4%가 ‘(참여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인터뷰와 언어 네트워크 분석에서는 ‘감정’ ‘연결’ ‘치유’ 등의 키워드가 중심에 위치했다. 예술이 단순 치료 보조를 넘어 환자의 감정 표현, 사회적 관계 회복, 자기 존중감 강화에 실질적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예술이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동력임을 확인한 부산문화재단은 올해 병원 예술치유 프로젝트 ‘병원 아트’를 마련해 환자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번 사업에는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김옥련발레단이 함께 했다. 일생을 발레리나로 살아온 김옥련발레단 김옥련 단장은 2022년 자궁암 4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예술이 자신에게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됐는지 새삼 체감했다.
치료차 병원 입원 중 만난 환자와의 짧은 포옹에서 ‘몸이라는 자원을 감사히 여기는 삶’을 발견했다는 김 단장은 “예술이 환자 상태를 개선한다”고 믿는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박인선 병원장과 의기투합해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춤추는 전투화’ ‘펀펀댄스스쿨’ ‘나도 백조다’ 등 다양한 예술교육 활동을 이어온 그녀의 경험은 병원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 단장은 “환자들이 스스로를 안아주는 움직임 이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예술치유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3년부터 김 단장과 협업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플레이아트 놀터 서혜인 대표는 40대 중반 갑작스러운 대장암 진단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무대를 포기할 위기에서 ‘춤 명상’ ‘춤 치료’로 눈을 돌리면서 예술치유를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바꾸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이후 그는 10년 넘도록 자가 회복과 감정 해방의 경험을 나누고 치유를 안내하는 길잡이를 맡아왔다. 소마요법 등 표현예술치료 이론을 접목한 그는 “몸짓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고, 감정이 표현되는 가장 순수한 언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진심이 통한 것이었을까. 지난달 20일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에서 진행된 첫 수업에 참여한 환자들은 기대 이상으로 적극 수업에 참여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말이 어눌했지만 몸짓은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자신을 안아주고 쓰다듬으면서 굳었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뇌졸중으로 입원한 김상훈(47) 씨는 초반의 어색함을 금세 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다양한 즉흥 움직임으로 마음 상태를 표현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치유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김 단장은 “나를 안아주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치료도 어렵다”며 “예술을 통해 조그만 변화라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희망이자 치유의 길”이라고 밝혔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