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서관이 바뀌고 있다. 과거 책을 빌리고 공부만 하던 공간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새로 개관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도서관들은 칸막이가 없는 자료실, 계단형 열람석, 휴게 공간을 넓게 배치해 개방적인 공간에서 독서와 휴식,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 강좌 및 동아리 활동을 위한 다목적실을 마련해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도 하며 도서관에 따라서는 영화 감상실과 같은 특화된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뀌면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도서관을 찾게 되고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돼 시민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나아가 특색 있는 도서관을 지으면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불러 모아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일례로 2023년 개관한 강원도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복합 문화 공간의 명소로 이름을 알리면서 인제군 인구의 6배가 넘는 18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실제로 요즘 도서관에 가 보면 멋진 인테리어와 밝은 분위기가 마치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 연인과 친구들이 계단형 열람석에 모여 앉아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며 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차분히 앉아 책을 읽자니 적잖이 불편하다. 계단형 열람석은 의자와 달리 허리 받침이 없고 바닥이 딱딱해 긴 시간 앉아서 독서하기가 어렵다. 또 여러 자료를 펼쳐 살펴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다. 개방형 로비 소파에 앉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 효과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소파의 높이와 등받이 간격, 탁자와의 높이 등이 독서 및 공부에 적합하지 않다.
아무래도 익숙한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열람실을 찾아보지만, 열람실은 다목적실과 전시실, 영화 감상실과 같은 문화 공간으로 대체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문득 트렌드를 좇느라 도서관의 본질을 등한시한다는 우려가 든다.
도서관법 3조 1항에 따르면 ‘도서관이란 국민에게 필요한 도서관 자료를 수집·정리·보존·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교양습득·학습활동·조사연구·평생학습·독서문화진흥 등에 기여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그런데 독서와 학습을 위한 장소인 열람실을 아예 없애는 것은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읽힌다.
공공도서관에서 열람실이 사라지며 도서관에서 학습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사설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 등으로 쫓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 한 달 이용 비용이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들어 저소득층 청소년이나 청년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교육부와 몇몇 지자체는 비어 있는 공공시설에 공공 스터디 카페를 만들거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스터디 카페 이용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열람실이 원래 있어야 할 도서관에서는 열람실을 없애고, 설립 목적이 다른 엉뚱한 공공시설에 열람실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과 학습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도서관 문화 공간의 이용 실태를 자세히 파악해 이용이 저조하거나 비효율적인 공간을 열람실로 조성한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2021년 재개관한 부산 북구 만덕 도서관은 기존 열람실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작은 영화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덕 도서관 홈페이지 작은 영화관 예약 현황에 따르면 2025년 1월에서 5월까지의 이용객은 월평균 45.8명으로 하루 2명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 또 지난 8일 국회부산도서관 전시실의 경우 필자가 2시간 동안 이용객을 관찰한 결과, 화장실을 잘못 찾아 들어온 어린이 한 명과 전화를 하러 들어온 아저씨 한 명 외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이용이 저조한 공간은 열람실로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은 현재처럼 문화 공간으로 잘 활용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도서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부산도서관 벽에는 ‘인류의 삶을 바꾸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나온다’는 문구가 있다. 비록 인류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인내하고 노력하여 마침내 그들의 인생을 스스로 바꾼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유행과 추세에 맞지 않는다며 무조건 열람실을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열람실을 적극적으로 지켜내야 할 의무가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