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들이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다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곡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리스트 ‘마제파’, ‘메피스토 왈츠’,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라벨 ‘‘밤의 가스파르’ 같은 곡이 그런 식으로 악명을 날리는 곡이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피아노 버전 ‘페트루슈카’도 이 대열에 끼는 곡이다.
스트라빈스키의 국제적인 명성은 세르게이 댜길레프와 만나면서 시작된다. 댜길레프는 1909년 파리에서 ‘발레 뤼스’(Ballet Russe)를 창단하여 미하일 포킨의 안무로 ‘세헤라자데’를 공연, 유럽 무용계의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최고의 러시아 무용수들을 기용한 댜길레프는 자신의 무용 혁명을 받쳐줄 음악가로 스트라빈스키를 점찍는다. 1910년 스트라빈스키의 첫 번째 발레 음악 ‘불새’가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페트루슈카’가 뒤를 이었다. 이 두 편의 발레로 댜길레프 사단과 스트라빈스키는 유럽에서 첨예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1913년 ‘봄의 제전’으로 결정타를 날리게 된다.
이후 스트라빈스키는 110여 곡의 작품을 남기고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 가지 사조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오르페우스 신화와 페르골레시, 바흐의 음악, 더하여 재즈, 탱고, 집시 음악, 심지어는 12음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적 소재를 받아들였다. 언론은 그를 두고 ‘음악의 혁명가’ 또는 ‘카멜레온 음악가’로 표현했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 자신은 “나를 혁명가라고 부르지 말길 바란다. 관습을 깨트리는 사람에게 모두 혁명가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자기 할 말을 하기 위해 공인된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예술가는 누구나 혁명가이지 않겠는가?”라고 멋진 말을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1830년대 러시아 슈로브타이드 축제 기간을 배경으로, 사람이 아니라 인형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못생긴 인형 페트루슈카는 발레리나를 사랑하지만, 발레리나는 용감한 무어인 인형을 사랑하면서 삼각관계의 갈등이 벌어진다. 알렉상드르 브누아가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를 맡고, 안무는 미하일 포킨, 페트루슈카 역은 바츨라프 니진스키, 그리고 지휘는 피에르 몽퇴가 맡았다.
1921년 스트라빈스키는 이 발레 음악에서 세 곡을 뽑아 피아노 독주를 위한 모음곡으로 출판했고, 이를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했다. 1곡 ‘러시안 댄스’, 2곡 ‘페트루슈카의 방’, 3곡 ‘사육제’로 구성되었다. 악명높은 난곡이지만, 테크닉이 받쳐주는 연주자를 만나면 더할 수 없이 맛깔스러운 음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