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뭐지?” 하던 공무원들 이젠 DNA에 각인됐다 비결은 ‘빅데이터 고수’ [비즈&피플]

입력 : 2025-06-1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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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AI 배우기’ 열풍

김현선 부산시 빅데이터과장, 2022년부터 강의
3년간 2000여 명 수강…강의마다 ‘매진’ 사례
AI에게 잘 질문하는 법, 데이터 시각화 방법 등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 구성
한 수강생은 ‘포트홀 예측 시스템’ 개발하기도

김현선 부산시 빅데이터과장은 공무원들의 데이터 리터러시를 높여야만 부산 행정의 혁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대현 기자 jhyun@ 김현선 부산시 빅데이터과장은 공무원들의 데이터 리터러시를 높여야만 부산 행정의 혁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대현 기자 jhyun@

인공지능(AI)이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AI 민간 자격증까지 나왔고, 이미 토익(TOEIC) 성적표 ‘대우’를 받고 있다. 상당수 기업은 채용 때 AI 자격증 보유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신입사원에게 AI 교육을 실시한다. AI를 잘 다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개인 업무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AI DNA’를 갖춘 인재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공공 부문도 예외가 아닌데, 부산시 공무원 사이에는 벌써부터 ‘AI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부산시에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생성형 AI 강연이 있는데 3년간 강연을 들은 수강생이 2000명이 넘는다. 이 강의는 1 대 1 방식으로 진행돼 회당 수강생이 많아야 20~30명 정도여서, 강의마다 매진 사례를 기록한다고 한다. 강연을 듣고 시민 신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면 포트홀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직접 만든 직원도 있다.

부산시에 ‘AI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김현선 부산시 빅데이터과 과장이다.


■“행정은 컴퓨터만으론 안 돼”

데이터 전문가인 김 과장은 2022년 임기제 공무원으로 부산시에 합류했다. 2018년 처음 생긴 빅데이터과의 세 번째 과장이 된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매니징 역할만 하다가 데이터 관련 기획이나 활용을 해보고 싶었어요. 온갖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공직에 지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는 대학에서 통계를 전공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미국 텍사스 A&M대학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귀국 후에는 민간 기업에 몸담았다. 2017년 산업은행에 입사해 근무한 뒤 삼성 SDS 인공지능분석팀, IBM 데이터 기술 부문 상무 등을 거쳤다.

공직 적응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데이터를 추출하고 가공하고 다시 저장하는 민간에서의 업무는 사람과 직접 대면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의 삶과 연관된 부산시 업무는 동료 공무원이나 외부인을 상대할 일이 상당했다. 부산시의회 시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김 과장은 “성향으로 치면 내향적인 성격인데,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부터 쉽지 않았고 설득까지 해내야 해 더 괴로웠다”고 전했다.


부산시청 공무원이 직접 만든 포트홀 관리 시스템. 포트홀이 발생한 GPS주소와 당시 사진, 기상 상황을 토대로 포트홀 발생 의심 구역을 예측할 수 있다. 부산시 제공 부산시청 공무원이 직접 만든 포트홀 관리 시스템. 포트홀이 발생한 GPS주소와 당시 사진, 기상 상황을 토대로 포트홀 발생 의심 구역을 예측할 수 있다. 부산시 제공

■낯설던 강연, 입소문을 타다

“직원들이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면 안된다 생각했어요.” 동료 공무원을 대상으로 AI 기술 강연을 하겠다고 기획한 김 과장이 정한 기준이었다. AI는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공직사회에서도 당시엔 그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기술 용어 정도로 낯설었다.

김 과장은 “강의를 듣고 부서로 돌아간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어야 강의가 입소문이 나고 그래야 더 많은 직원들이 강의를 들으러 올 거라고 판단했다”고 얘기했다.

강연도 실제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몄다. 코딩 프로그램 등 ‘개발자의 언어’는 가급적 쓰지 않고 비전공자 눈높이에 맞는 커리큘럼으로 강의를 짰다. 챗GPT 등 생성형 AI에게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질문 방식이나 데이터를 지도 등에 표시해 시각화하는 방법 등 행정 기획이나 실무를 염두에 둔 내용이 담겼다.

커리큘럼을 짤 때도 강연을 신청한 직원들의 부서 비율까지 고려했다. 가령 건강정책과 직원의 비율이 높으면 건강취약 계층이 어디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지 데이터로 시각화해 보여줬다. 수산정책과 직원들이 많이 참여하면 수산물 유통 현황 등을 기반으로 어업인들에게 필요한 지원 사업을 도출해 제시했다.

대중교통 업무 등은 AI 기술 이해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부문이었다. AI를 이용해 동백전 사용 패턴을 분석하는 방법, 버스 승차하 수요를 분석하는 방법 등도 강의에 넣었다. 김 과장은 “실제 행정에서 많이 쓰일 수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했다”고 귀띔했다.


■이거 어떻게 만든 시스템이야?

교육 성과는 대단했다. 2023년 4주 짜리 강의를 들은 당시 부산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 박강용 주무관은 신고받은 포트홀 발생 장소를 지도로 시각화해 미래 포트홀 발생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김 과장은 “당시 포트홀 신고가 들어오면 포트홀 발생 정보를 수기로 작성했는데, 이런 정보가 시각화되지 않다 보니 출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포트홀 발생 요인을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없었다. 박 주무관은 강의 수강 후 GPS를 기반으로 기존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하는 도중에 포트홀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과와 다른 부서 간 협업도 활발해졌다. 빅데이터과의 본연의 업무는 각 부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획, 분석하고 실제 행정에 적용하는 일이다. 업무 협조 난이도도 높아졌다. 이전에는 ‘특정 지역 유동인구를 알고 싶다’ 정도의 질문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버스 승하차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지역의 유동인구를 알고 싶은데, 하차 시 교통카드를 찍지 않는 승객들의 데이터가 없다’는 식의 구체 데이터를 콕 집어 요청한다.

김 과장은 ‘의료버스 운영 데이터’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부산시는 의료사각지대를 찾아 검진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버스를 운영 중이다. 담당과에서는 만성질환자가 많이 거주하는 곳에 의료버스를 배치하기를 원했고, 빅데이터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와 기존의 의료버스 운영 실태를 기반으로 만성질환자가 많이 거주하는 구군을 도출해 냈으며,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의료버스 노선을 구축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실 우리 과의 일이 대외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부산시 공무원들이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좀 더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을 발굴할 수 있게 돕는 일이 성과이자 보람입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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