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2시간 일하고도 쉴 틈 없어”… 근로자 ‘폭염휴식권 보장’ 목소리 커진다

입력 : 2025-06-24 17:13:25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폭염 속 강제 휴식, 정부는 제동
현장선 “휴식권, 생명 걸린 문제”

24일 오전 11시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건설현장 근로자 등의 폭염휴식권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손희문 기자 24일 오전 11시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건설현장 근로자 등의 폭염휴식권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손희문 기자

부산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철근 작업자 A 씨(46)는 지난해 여름 체감온도가 37도를 넘은 오후 2시께, 5층 슬래브 위에서 작업을 하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땀이 줄줄 흐르고,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A 씨는 “철근은 손으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달궈졌고, 바닥은 열기로 체감온도는 40도 가까이 됐을 것 같다”며 “33도가 넘는 날엔 10분만 서 있어도 힘든데, 2시간 넘게 작업을 멈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무더위철을 앞두고 건설현장 근로자를 비롯한 실내외·이동 근로자들의 ‘폭염휴식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무더위 속 작업 강행은 생존의 문제”라며 피해와 어려움을 호소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24일 오전 11시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대응 안전 대책과 휴식권 제도화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폭염휴식권이 포함된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을 조속히 개정해 시행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가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폭염 지침)으로 현장 대응을 대신하려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폭염휴식권이란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다. 건설·택배·배달·환경미화·경비·집배원 등 실내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전반에 적용된다. 지난해 이러한 내용을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세부 규칙이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지만,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일률적인 적용에 재검토 결정을 내리며 제동을 걸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022년부터 고용노동부 폭염 지침의 법제화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건설 현장에서 그늘 제공, 일정 시간 휴식, 물 공급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권고가 아니라 명확히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달 중 사업장 별로 휴게공간 등 실태를 조사한 뒤, 다음 달 초 고용노동부에 폭염 관련 구체적인 이행 대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건설업계는 무더위 속 작업자 보호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폭염휴식권의 일률적 적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공정 지연과 생산성 저하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들고 있다.

부산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 일정은 날씨뿐 아니라 장비 투입, 협력업체 인력 등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단순히 온도 기준만으로 일괄 중단하긴 어렵다”며 “폭염 속 안전은 중요하지만, 현장 여건에 맞는 자율적 대응 여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염 속 노동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설업계도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추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일부 건설 현장에서는 ‘아이스맨’을 배치해 얼음물이나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거나, 간이 휴게실과 제빙기를 설치하는 등 폭염 대응 조치가 과거보다 늘었다.

이 같은 변화에는 실제 처벌 사례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에는 2022년 대전에서 건설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중처법을 적용해 현장 책임자를 처음으로 기소했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은 폭염 상황에서 실질적 작업 중단과 휴식권 보장 없이는 반복되는 인명 피해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건설노동자는 “현장에서는 작업 중단은커녕 잠깐 앉아 쉴 공간도 없다”며 “건설 현장 근로자의 80% 이상이 사실상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부산온나배너
영상제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