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에 ‘부산 대표’로 출사표를 던진 4선의 이헌승 의원이 지난 16일 선거에서 아쉬운 성적으로 고배를 마셨다. 부산 국민의힘은 당이 전국적으로 완패한 지난해 총선에서 지역구 18석 중 17석을 차지하며 위상 제고가 기대됐지만, 정작 당 핵심부 진입 경쟁에서는 두각을 보이지 못한 채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의 영향도 있지만, 구심점 없이 ‘각자도생’인 내부 요인 탓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석수에 걸맞은 활약을 하기 위해 중진은 물론 초재선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지역 내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민주계가 국민의힘 전신 전당을 주도하던 시절 부산 중진들은 당의 주력이었다. 원내대표만 해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2004년 원내총무 권한대행을 맡았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뒤를 이어 김무성 전 대표는 2010년 같은 자리를 맡았다. 이들은 이후 국회의장과 당 대표 등을 도맡았고, 지역 정치권의 위상도 덩달아 커졌다.
그러나 이들이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부산 국민의힘은 당대표나 원내대표, 국회의장·부의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 당시 4선의 유기준 전 의원이 원내대표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21대 때 서병수 전 의원은 국회부의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 사이 경남의 홍준표 전 지사, 울산의 김기현 의원 등이 당대표를 맡았지만, 정작 PK 맏형 격인 부산 정치권은 국회직·당직 핵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심지어 부산에서 ‘소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꾸준히 대선주자를 배출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를 이룬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당 중진들이 지역 초재선들을 요직에 기용해 역량을 키우는 선순환도 원활하지 않다.
원내대표의 경우, 2000년대 초반 각 정당이 원내 중심 정책 정당을 표방하면서 그 위상이 한껏 커졌다.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뽑기 때문에 계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정책과 정무 능력, 당내 네트워크를 갖추지 않고서는 의원들의 신임을 얻기 어렵다. 부산 중진들의 당내 위상이나 역할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선거의 경우, 당초 적임으로 평가받던 김도읍 의원이 불출마한 뒤 이 의원이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이 패착이었다는 내부 분석도 나온다. 원인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PK를 비롯해 영남권이 총선 공천 때마다 ‘중진 물갈이’ 타깃이 되면서 당 지도부에 도전할 인적 자원이 희소해진 탓도 있겠다. 특히 20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부산 공천은 ‘중진 학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갈이 폭이 컸다. 그러나 비슷한 조건의 대구·경북(TK)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부산 국민의힘이 당내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 내부 요인을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역 정가에서는 “리더 격인 중진들이 사라진 후 구심점이 없어졌다”,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하기보다 선수 연장에 급급한 문화가 팽배하다”는 각종 비판이 나온다. 부산 야권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지역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고스펙’ 인재들도 대거 영입했지만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팽배하다”면서 “무기력한 모습이 계속 되면 부산 국민의힘 전체가 ‘쇄신론’에 휩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