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다음날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전격적으로 지시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공약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4월 18일이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해양 강국 도약을 위해서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SNS에 실었다.
그때만 해도 표를 얻기 위한 공약(空約)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지난 5월 2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그는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거듭 약속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최대 외항선사인 HMM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공약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공약은 공약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국민의힘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 공약은 실현 가능성 없는 공허한 정치쇼”라고 힐난할 정도였다.
이재명 대통령, 해수부 이전 전격 지시
단순 이전 넘어 해양 업무 집적화 관건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선 도시가 부산
새 정부 미래 동력 이곳에서 실험 당연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틀 만에, 그것도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직접 지시하면서 그 말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겠지만, 추진 동력만큼은 놀랍다. 2018년 해양진흥공사의 부산 설립에 이어 부산으로서는 놀라운 쾌거이다.
물론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부산의 숙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반발도 적지는 않다. 해수부 노동조합은 86%의 반대 목소리를 담은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해수부 퇴직 공무원 단체는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재고해 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지역 간 갈등 조짐도 감지된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항만공사 기능부터 지방에 적절히 분산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고, 최민호 세종시장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급선무”라는 말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반대했다.
부산에서도 마냥 환영 일색은 아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시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지역 민심을 직시하라”면서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먼저 완수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해수부를 이왕 부산에 두려면 ‘체급’부터 올려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단지 해운과 항만, 수산에 국한된 권한만으로는 부산이라는 대도시 경제를 견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진정한 시너지를 내려면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동이 아닌 각 부처에 흩어진 해양 업무를 집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 및 해상풍력, 국토부의 국제물류, 환경부의 해양기상 업무까지 바다와 관련된 행정을 모두 해수부에 맡겨야 한다는데 필자도 궤를 함께한다. 해운물류 대기업 HMM의 부산 이전, 해사전문법원 부산 설립도 함께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론에는 생각보다 많은 추측이 뒤따른다. 특히 많은 이들이 ‘왜 지금이냐’는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북극항로를 통한 부산 경제 발전을 주장한 데서 그 시점의 단초를 찾기도 한다. 북극항로는 2030년을 전후해 얼음이 녹는다는 전제로 미국이나 유럽 항로를 기존 바닷길보다 최대 40일 이상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이 아니면 진짜 안 되는 이유’는 없을까. 지금 국가적으로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다급한 현안은 ‘지역 소멸’이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는 대한민국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청년 실업 완화 등 많은 정책 목표도 바로 지역 소멸 방지에 무게를 뒀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통계청의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이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저출생과 초고령화로 광역시 중 가장 먼저 ‘소멸위험 단계’에 들어선 도시가 바로 부산이었다. 20~39세 출산 적령기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소멸위험지수가 부산의 경우 0.49로 전국 광역도시 중 유일하게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소멸위험도가 높은 지역은 양질의 일자리도 당연히 더 줄어든다. 이는 부산이 처한 현실이고 미래다.
진보든, 보수든 새 정부가 지역소멸 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국가 존립의 책임까지 져야 할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소멸 위기에 가장 먼저 놓인, 그러나 해양도시라는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 부산에서 새 정부가 미래 동력을 실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시나리오는 이미 시작됐다. 북극항로 개척을 통하든,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초석으로 삼든, 그 동력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국가 역량을 부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소멸 위기를 해결한 정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이 실패하면 정권도 실패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그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져 올리겠다는 새 정권의 국정 방향에 해양인으로서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