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사람이 추해지는 순간

입력 : 2025-06-22 18:05:43 수정 : 2025-06-22 18: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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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은 지극히 양가적 화두
사천 우주항공청 놓고도 ‘잡음’
산하 연구소가 본청 이전 주장
개인사가 대의명분 돌변한 세상
해수부·HMM 이전 잘 지켜봐야

교수 출신 한 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알만한 공기업 이사장으로 낙점을 받아 업무 보고를 받다 적잖게 놀랐단다. 급여나 복지에서 큰 메리트가 없다고 여겼는데 인사 파일을 열어보니 서울대 출신이 수두룩했다고. 공단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서울을 떠나서는 수행할 수 없는 업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지방 이전은 안 하는 공기업’이라고 입소문이 나면서 오버스펙의 사원이 줄줄이 입사를 했다는 것이다.

균형발전은 지극히 양가적인 화두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치료할 해법은 균형발전이라고 떠들면서도, 속으로 나와 내 가족만큼은 열외라고 다들 생각한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젊은 시절 원치 않던 인사로 겪었던 서울 타향살이는 부산이 고향인 나 역시도 편치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개인사는 개인사일 뿐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욕심이 그럴싸한 대의명분으로 둔갑할 때 조직은 몸살을 앓게 된다. 조직은 고달픈 개인사를 보듬어 줘야 하지만, 개인이 그걸 명분 삼아 대자보 붙이고 동네방네 떠들게 방치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게 원칙인 까닭이다.

경남 사천시를 우주항공복합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는 첫걸음을 뗐다. ‘우주항공의 날을 기념은 해야겠는데 우주항공청은 멀리 있으니 가까운 경기도에서 기념식을 하자’던 과기부의 희한한 발상이 지난달 경남과 사천의 비난 여론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대전의 항공우주연구원 노조가 나서서 우주항공청을 세종시로 돌려보내란다. 사천시 국회의원이 산하 연구기관도 본청이 위치한 사천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로 다음 날에 벌어진 일이다.

법안 개정이라는 게 이득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의 입장이 갈리기 마련이다. 본회의를 통과하던, 폐기되던 법안이 꾸준히 발의되는 과정 자체는 건강한 입법 행위라고 봐야 한다. 한데 개정안이 나오자마자 산하 기관 노조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지역 이기주의란다. 산하 기관이 본청을 우리 동네로 다시 옮기라는 선 넘는 발언까지 내지른다. 지난해에 우주항공청이 이전을 해도 연구개발은 여기서 계속할 테니 연구개발본부를 분리신설하자는 법안까지 발의했었다. 이쯤 되면 과연 지역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건 어느 쪽일까.

개인사를 대의명분으로 둔갑시키는 몰염치가 전국적인 유행이다. 수도 이전에 반대하며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관습헌법에 해당한다’라던 2004년 헌법재판소의 어이없는 판단이 빌미를 제공했다. 몰염치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서도 볼 수 있듯 현재진행형이다. 우린 못 간다고 버티는 여의도 금융노조를 앞세워 서울과 부산을 싸움을 붙이던 이가 협치를 진두지휘할 국무총리가 되겠다고 나선 상황이니 말이다.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는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신임을 묻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내년 부산 선거에 대한 큰 기대를 내비쳤단다. 여야 간 승부는 여당이 공언한 해양수산부와 HMM의 이전 성공 여부에 갈릴 터다.

그러나 해수부와 HMM 이전이라고 무탈하게 진행될까. 달랑 연구기관 두 곳을 이전하자는 법안이 발의만 되어도 난리가 나는 세상이 됐다. 공공기관 이전에서 원칙이 깨지면서 그 후유증이 부산과 사천에 이어 전국을 돌며 환부를 들쑤신다.

조직 개편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던 해수부를 다시 부활시킨 일등 공신은 부산 시민이다. 그런 해수부 내부에서도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HMM에서도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혼재한단다.

1차 이전 당시 부산으로 터를 옮긴 한국거래소의 올해 정기인사에서는 순환근무 지원자가 몰렸다. 내규까지 동원해 근무자를 선발했다니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른 공기업에서도 가족 이주를 거부하는 직원이 줄고 정주 만족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그 사이 부산 대학가의 금융 관련 학과 입결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원칙을 지킨 공공기관 이전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무원칙에 부화뇌동했다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사람이 추해지는 건 내 욕심과 대의명분을 착각하는 순간부터다. 언제부터 녹을 먹고 사는 공직 사회에서까지 ‘악쓰고 뭉개면 우린 열외다’라는 식의 몰염치가 만연하게 됐을까. 순환근무 확대나 분소 설치 등으로 원칙에 상응하는 해법을 찾더라도 더는 소수의 악다구니에 휘둘려 지역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공공기관 이전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권상국 지역사회부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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