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때 사고 나면 어쩌나”… 법 개정에도 모호한 기준에 불안한 교사들

입력 : 2025-06-24 11:38:14 수정 : 2025-06-24 17: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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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학교안전법 개정안 시행
‘안전조치 의무’ 명확한 규정 없어
부산 대부분 학교 현장체험학습 운영
“안전한 환경 위해 제도 보완 절실”

지난달 1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을 찾은 학생들이 해변가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을 찾은 학생들이 해변가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체험학습 중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을 덜어주는 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안전 의무’의 기준이 모호해 교사들의 불안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의 학교가 연 1회 이상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부산에서는 이번 개정안의 영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교육 당국이 보조인력 예산 편성과 컨설팅 확대 등 지원에 나섰지만, 현장 여건 개선을 위한 제도 보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교사가 현장체험학습 중 안전관리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 ‘학교안전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안에는 ‘학교장과 교직원이 학교안전사고 예방과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다만 ‘안전조치 의무’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내용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향후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법 개정은 2022년 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를 계기로 추진됐다. 당시 담임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교육계 전반에서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 경감 요구가 쏟아졌다.

부산은 대부분 학교가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어 법 개정의 영향이 다른 지역보다 크다. 부산교사노조가 지난 16일부터 닷새간 부산 지역 교사 379명(309개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 97.9%가 연 1회 이상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한다고 응답했다. 학기당 2회 이상 운영한다고 답한 비율도 35.6%에 달했다. 반면 서울은 전체 초등학교 606곳 중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곳은 지난 3월 기준 209곳(34%)에 불과하다.

부산의 한 현직 교사는 “서울은 몇 년 전부터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현장체험학습을 줄이는 추세지만, 부산은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대부분 학교에서 체험학습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교사들의 불안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설문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55.2%에 그쳤다. 불안이 여전하다고 답한 교사들은 ‘책임 면제 요건이 모호하고 일관되지 않음(88.8%)’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어 ‘책임 판단 주체에 대한 신뢰 부족’ ‘사고 발생 시 언론·학부모의 압박’ 등을 지적했다.

이에 교육 당국은 교사들의 안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내놨다. 부산시교육청은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에 현장체험학습 안전 요원 배치를 위한 예산 9억 5000만 원을 편성했다. 지난 21일 ‘현장체험학습 학생안전관리 조례안’이 부산시의회를 통과하면서, 시교육청은 학생 50명당 안전 요원 1명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학교 한 곳당 15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안전요원은 전 일정에 걸쳐 인솔교사와 동행하며 안전을 관리하고 교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체험학습이 집중되는 시기에 인력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공무원연금공단, 퇴직소방 관련 단체 등과 업무 협약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희망 학교를 대상으로 수학여행 계획 단계부터 추진 절차, 교육 프로그램 구성, 안전대책 수립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컨설팅도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은 조례 제정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교사노조 김한나 위원장은 “학생 수송에 사용되는 전세버스의 노후화, 인력 배치 기준과 매뉴얼의 부실, 보조 인력의 전문성 부족 등은 여전히 현장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며 “교사들이 실제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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