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발전’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그것은 1987년에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1992년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자연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에 위협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 세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원자력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첫 번째 기준은 통과할지 몰라도 두 번째 기준에 부합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원자력발전소(원전)는 방사성폐기물을 남기기 때문이다. 원전은 생로병사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각종 폐기물을 내놓는다. 원전을 아무리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하더라도 폐기물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의 세기에 따라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저준위 폐기물에는 장갑, 덧신, 걸레 등이, 중준위 폐기물에는 방사선 차폐복, 원자로 부품이 포함된다. 고준위 폐기물은 주로 사용후핵연료를 지칭하며 핵분열 생성물의 농축 폐액도 여기에 속한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보존 기간은 100만 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는 장소가 바로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이다. 경주에 설치돼 있는 방폐장은 중·저준위 방폐장에 해당하며 아직 고준위 방폐장은 마련돼 있지 않다. 고준위 폐기물은 임시저장 시설에서 보관 중인 단계에 있는데, 문제는 해당 시설의 용량이 포화되는 시기가 임박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앞으로 폐쇄되는 원전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고준위 폐기물의 처분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올해 3월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고 하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많은 사람들은 원자력이 경제적이라는 점을 거론한다. 주지하듯, 원전의 발전 단가(전기 1kWh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는 매우 저렴하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을 포함시키면 어떻게 될까? 또 원전이나 방폐장의 부지를 확보하는 데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유발된다. 이러한 점을 추가한다면,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에너지 수요에 맞추어 원전을 계속 증설하는 것은 너무 쉬운 정책이다. 건설 중이거나 가동 중인 원전은 알뜰하게 사용해야겠지만, 신규 원전의 건설은 가급적 자제할 필요가 있다. 2017년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어 시민참여단 숙의를 바탕으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되 원자력발전은 점점 축소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되기도 했다. 친원전 진영과 반핵 진영에게는 모두 못마땅한 결론이었지만, 시민참여단은 일련의 학습을 통해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던 셈이다. 많은 국가가 고민하는 것은 ‘에너지 믹스’ 혹은 ‘에너지 포트폴리오’이다. 화석연료에 의한 에너지 생산을 점점 줄여나간다는 전제하에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이다. 좋은 에너지의 조건으로는 경제성, 안정성, 환경친화성, 안전성 등이 거론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에너지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원자력공학과는 에너지공학과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나의 에너지만 공부하다 보면 균형 감각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5%로 집계되고 있다. 사상 첫 두 자릿수로 나아갔지만,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선 여전히 꼴찌 수준이다. 지난해 OECD의 평균은 35.8%로 우리나라의 2038년 목표를 웃돈다.
재생에너지의 단점으로는 경제성이 꼽힌다. 그러나 기술의 역사를 보면 모든 기술이 처음부터 경제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원자력도 초창기에는 엄청 비싼 에너지였다. 어떤 기술에 계속 투자를 하고 공을 들이다 보면 그 기술이 경제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잘 가꾸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전이 너무 정치화되었다. 원전 확대에 찬성하면 보수이고, 딴지를 걸면 진보라는 식이다. 정보 편향 때문에 복잡한 문제를 너무 간단하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는 이모저모를 따져야 하는 법이다.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서 현실적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공동의 미래’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