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면 글로컬대학 가나

입력 : 2025-06-24 18: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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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지역 대학 정책으로 공약
9개 거점국립대 키워 혁신 주도
예산·세부적 정책 방향 논쟁 전망

정권마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 전환
임계점 넘는 전향적 지원 없이
추락하는 지역 대학 살리기 어려워

‘서울대 10개 만들기’ 주장이 처음 나온 건 2021년 말의 일이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저서 〈서울대 100개 만들기〉에서 단순한 고등교육 정책 구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지식·권력 구조를 전환하자는 대담한 제안을 하고 나선 게 출발이었다. 다소 파격적이고 엉뚱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주장은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서울대’라는 단어가 갖는 파괴력에 더해 모두가 ‘교육 지옥’에 살고 있다는 공감이 호응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논쟁적 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제도권으로 끌고 온 게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다. 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발표한 것이다. 전국 9개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과 연구 역량을 집중 투자해, 이들 대학을 지역 혁신과 성장의 중심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설명이었다.

새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육 정책 논의가 진행될 터인데 대학 명칭에서부터 예산 문제까지 대학 입시보다 더 복잡한 방정식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 부산캠퍼스 서울대 경남캠퍼스인지, 한국1대학 한국2대학인지 브랜드부터 첨예한 논쟁거리일 게 뻔하다. 당장은 학점 교류, 공동 연구, 공동학위제 등이 거론된다. 현재 1인당 교육비 지원액이 2500만 원을 밑도는 거점국립대를 6000만 원인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재정도 필요하다. 기존 글로컬대학,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어떻게 연계할지도 난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하루아침에 등장한 건 물론 아니다. 2003년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정책토론회에서 정진상 교수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 이듬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를 발표했는데 서울대 학부 폐지가 핵심이었다.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 국립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고 공동학위제를 운영하되 서울대는 학부 강의만 개방할 뿐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당시에도 교육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진행됐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화와 지역 간 교육 격차의 뿌리는 깊고 벽은 두꺼웠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 대학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은 노무현 참여정부였다. 지역 대학을 육성해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면 지역 격차가 해소되고, 인재가 지역에 정착해 지역 대학이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역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NURI·누리)에 5년간 1조 2000억 원을 투자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대학 경쟁력과 재정 효율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누리사업을 폐지했다. 박근혜 정부는 산학 연계 선도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대학에 2조 1000억 원을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윤석열 정부는 RISE와 ‘글로컬대학 30’을 통해 지자체가 끌고, 중앙정부가 미는 ‘지역 맞춤형’ 지역 대학 육성 정책을 펼쳤지만, 탄핵으로 정권이 막을 내렸다.

이처럼 각 정권마다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지역 대학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정책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임계점을 넘어서는 전향적 정책 없이 지역 대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역 대학의 추락은 지역의 추락과 동의어다. 정권마다 균형발전을 강조하지만,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하듯 지역 대학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산만 해도 그렇다. 서울대 한 해 예산이 1조 5000억 원인데 9개 거점대학에 버금가는 예산을 투입하는 문제부터 허들이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의 경제 규모에 비해 대학 지원 예산이 적다는 게 근본 문제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예산이 서울대의 5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모델로 UC로 시작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10개 연구중심대학 예산도 2020년 기준 53조 원에 달한다. 세계대학평가기관들이 발표하는 글로벌 대학 순위는 대체로 재정 순위와 일치하는 게 현실이다.

지역 대학 입장에서는 5년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이 더 큰 문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5년짜리 쪼가리 대책으로 근본적 변화가 시작될 리 만무하다. 글로컬대학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시너지를 통해 발전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지역 대학 육성을 통해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하면서도 첨단산업 인력이 부족하다며 수도권 대학의 정원 제한을 풀었던 게 지금까지 우리 정부 정책의 수준이었다. 국민주권정부라고 다를까.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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