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지역균형발전과 대한민국 코어 만들기

입력 : 2025-06-26 18: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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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대표

몇 년 전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적이 있다. 두어 달 정도 후 깁스를 풀고 나니 다리에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마음은 빤한데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곳곳에서 말하는 걸 들으니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봄,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았다. 하체 중심의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코어 근육이었다.

‘코어’(Core)는 중심, 핵심을 의미하며 지구의 중핵 부분이나 원자로의 노심(핵연료가 위치하여 핵분열이 일어나는 영역)을 뜻한다. 인체에서 코어는 척추, 골반, 복부 등 중심부를 말한다. 그것들을 지탱하는 근육이 코어 근육이다. 복부만 코어인 줄 알았는데 인체의 세로축과 가로축을 감싸는 근육 전체가 다 코어 근육이라 하니 나이가 들어도 곧은 자세를 가지려면 부위별 근력운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운동 효과가 아주 더디게 나타나 힘들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건축 코어 공간, 건물 중심 기능 역할

소규모 건물 한쪽 배치·대규모 땐 분산

수도권 집중 벗어나 분산·균형 이뤄야

건축에도 ‘코어’가 있다. 건축에서 코어는 엘리베이터, 계단, 화장실, 기계실, 샤프트 등 수직 동선과 설비, 피난의 핵심이 전부 모여 있는 건물의 중심 기능 공간을 수용하는 중심축이다. 코어의 역할은 건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공간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기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어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것의 계획에 따라 사무공간의 동선이 계획된다.

건축 설계를 할 때 코어 공간은 사무공간과 달리 수익성이 낮아 최소한의 규모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소규모 건축일 경우에는 건물 한쪽에 코어를 배치해 유효면적률을 높인다. 하지만 고층 건물이나 면적이 넓은 경우에는 구조상 불리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동선은 피난 시 불리하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지 못해서 건물 중앙에 코어를 배치하거나, 양쪽 끝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를 잘 이용하면 자연채광, 조망뿐 아니라 여유 있는 공간 배분으로 건축물이 더욱 살아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코어’는 어디일까? 바로 ‘서울’이라는 답이 나올 게 뻔하다. 지난 10년간 지방을 빠져나가 수도권으로 유입된 청년은 7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도시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로 인해 지역의 기능과 인구가 줄어들어 지역소멸은 점점 더 가속화된다. 정부가 2000년대 이후부터 지역균형발전 약속을 반복하고 있지만,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약 50%가 몰려 있다. 2022년 지역내총생산(GRDP) 통계를 보면, 수도권이 창출한 GRDP가 전국 총생산의 52.8%를 차지했다. 기업 수도 전국 기업 수의 52.6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절반이 넘는 경제 규모를 담당하는 셈이다.

대한민국 경제와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다양한 혜택들,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 등의 기회도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정주환경이 좋아지는 상황에서 수도권 집중은 당연한 결과다.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도 기회가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년들이 떠나면 그나마 지역에 남아 있는 기업은 인재를 수급하지 못해 결국 수도권으로 옮기거나 생산성 혁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결국 수도권 집중은 지역 소멸의 원인이자 결과로 악순환은 계속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서울 중심의 수도권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은 경쟁을 가열시키고, 주거비, 생활비, 교육비 등의 증가로 이어져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수도권 일극주의와 지역 소멸, 그리고 인구 소멸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건축 설계에 있어 소규모 건축물일 때는 한쪽에 코어를 배치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설계를 하지만 대규모 건축물일 때는 코어를 양쪽으로 분산시킨다고 앞서 말했다. 작은 구조에선 효율성이 중요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분산과 균형이 핵심이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이라는 단일 코어에 모든 기능과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국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을 살리고, 국가 전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능의 분산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2차 공공기관 이전 등의 공약도 이 같은 인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균형과 다핵의 힘으로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당장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양수산부 이전이 곧바로 지역균형발전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꾸준히 부위별 근력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바른 자세를 잡게 되는 것처럼 다양한 인프라를 촘촘히 엮는 작업도 함께 해야 한다. 좋은 설계란 늘 보이지 않는 곳부터 튼튼히 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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