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이 픽하고, 와인스펙테이터가 취했다 [비즈&피플]

입력 : 2025-07-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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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달맞이길 파인 다이닝 ‘율링’
작년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 선정
올해는 와인스펙테이터 2글라스 받아
“요리와 와인 페어링, 레스토랑 정체성”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레스토랑 ‘율링’. 창밖으로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다. 율링 제공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레스토랑 ‘율링’. 창밖으로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다. 율링 제공

세계가 주목한 부산의 레스토랑

와인잔을 기울일 때마다 해운대 바다가 잔물결처럼 번진다. 요리들은 와인과 어깨를 맞추듯, 천천히 물결처럼 등장한다.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레스토랑 ‘율링’. 지난해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지난달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2글라스를 받았다.

세계가 주목한 이 공간에는 ‘와인이 곧 삶’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와인계 미쉐린 ‘와인스펙테이터’

와인스펙테이터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다. 전 세계의 와인을 평가하고, 와인 리스트가 훌륭한 레스토랑을 선정해 매년 ‘레스토랑 어워드’를 발표한다. 와인 분야의 ‘미쉐린 가이드’라 불린다.

레스토랑 어워드는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1글라스(Award of Excellence)는 90종 이상의 균형 잡힌 와인 리스트를 보유한 곳이다. 2글라스(Best of Award of Excellence)는 350종 이상의 와인을 보유하면서 깊이와 다양성, 음식과의 매칭을 고려한 곳이다. 3글라스(Grand Award)는 전 세계에서 1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품종, 지역, 빈티지, 보관 상태 등에서 최고 수준을 갖춘 곳이다.

올해 와인스펙테이터는 전 세계에서 3811곳을 선정했다. 1글라스 2010곳, 2글라스 1704곳, 3글라스 97곳이다. 우리나라는 1글라스 7곳, 2글라스 23곳 등 총 30곳이 올랐다. 그중 부산은 단 2곳만 이름을 올렸다. 레스토랑 ‘율링’과 수영구의 와인 바 ‘와뱅’이다.

국내에서 2글라스를 받은 곳은 대부분 서울 강남이나 청담 일대의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업장이다. 그 가운데 부산의 레스토랑이 2글라스를 받았다는 점에서 율링은 더욱 주목을 끈다. 율링은 첫 도전에서 성과를 이뤘다.

■율링 박준용 대표의 와인 인생

율링 박준용 대표는 ‘와인에 미쳐 있다’고 했다. 1990년대 말, 달맞이의 가족 레스토랑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와인 인생의 시작이었다. 부산에서는 와인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외국인들이 와인을 멋지게 마시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뭔데 저렇게 맛있게 마실까’라는 궁금증이었다.

당시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는 형편없었다. 하우스 와인이라고 내놓는 것이, 팩 와인에 설탕을 탄 것이었다. 제대로 알고 싶었다. 책을 구해 공부하고, 외국인들을 만나 와인을 마셨다. 그렇게 인생이 새로워졌다.

그는 청사포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라꽁띠’에서 ‘페어링’(특정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것)을 도입했다. 부산에서는 처음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페어링 데이를 진행했는데, 100회를 넘긴 실험이었다. 박 대표는 “매달 새로운 요리 코스를 짜내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그 과정이 쌓이면서 페어링 성지 같은 곳이 됐다”고 말했다. 거기서 더 나은 걸 해보자 해서 문을 연 공간이 바로 율링이다.

율링 박준용 대표 율링 박준용 대표

■셰프와 소믈리에가 만드는 정체성

율링에 들어서면 와인 셀러가 먼저 눈길을 잡아 끈다.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제일 좋은 곳을 차지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역할이 주어진 듯했다. 클래식 와인부터 트렌디한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갖췄다.

율링은 도쿄 미쉐린 3스타 ‘세잔’과 서울 미쉐린 1스타 ‘라망시크레’를 거친 김성주 셰프와 국내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박민욱 디렉터가 함께 이끈다.

두 사람은 풍부한 경험과 미각적 감각을 바탕으로 부산의 미식 자산을 세련되고 트렌디하게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여름 제철을 맞은 농어를 주인공으로 코스를 구성하는 식이다. 기장군 로스터리 ‘더프트’의 원두, 지역 전통주 ‘다시마로’ 등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도 돋보인다. 맛뿐 아니라 경험 전체에 지역의 색을 입힌다.

율링은 페어링을 레스토랑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다. 박 대표는 “요리에는 셰프의 생각이, 페어링에는 소믈리에의 생각이 담긴다”며 “둘의 만남이 레스토랑의 정체성이다”고 말한다.

페어링 가격은 싸지 않다. 박 대표는 “와인은 한 병 팔면 잔 하나 닦으면 되지만, 페어링은 그 몇 배의 잔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직원이 왜 이렇게 많냐고 물으면 잔 닦느라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웃었다. 좋은 레스토랑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가격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산 미식의 저변을 넓히는 도전

부산이 미쉐린 가이드에 포함되면서 미식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부산 셰프들의 서울행 이탈이 줄었다. 부산에서도 배울 게 있고, 도전할 무대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음식 수준은 높아졌고, 외국인 관광객의 레스토랑 방문도 늘고 있다.

박 대표는 다양성과 시스템을 함께 강조했다. 박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파전과 막걸리만 보여줄 수는 없다. 파인 다이닝도 필요하다”며 “음식과 와인은 물론 전통주도 잘 팔 줄 알아야 결국 그것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역 내 전문가 육성에도 관심이 많다. 부산에서 인재를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질적인 현장 실습과 지원, 대학 교육과 대회 입상, 취업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젊은 창업가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끌어주는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율링은 ‘파동을 기억하는 공간’이 목표다. 박 대표는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두근거림, 와인을 한 모금 마셨을 때 올라오는 감정, 그리고 창밖 바다를 마주할 때의 감정. 그런 파동을 이어 가게 하고 싶다”고 했다.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율동의 공간, 율링이 꿈꾸는 미식의 방향이다.

▶박민욱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율링의 와인

도멘 아쉬, 크레망 드 사부아 ‘샹 데 플로콩’ NV(Domaine H, Crémant de Savoie ‘Chant des Flocons’ NV):스파클링 와인

-프랑스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국가 인증 자격을 취득하고 유수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 경력을 쌓은 한국인 하석환 씨의 작품이다. 자연이 잘 보존된 프랑스 사부아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눈꽃송이의 노래’라는 뜻의 이 와인은 이름 그대로의 미감을 선사한다. 부산 활동 화가 김무디의 작품 ‘봄눈’을 레이블에 담아 오감도 즐겁다.

산막 와이너리, ‘라라’ 청수:화이트 와인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과 장마라는 특수성 때문에 와인 산지로는 어려움이 있지만, 한국 와인들이 요즘 약진 중이다. 산막 와이너리가 있는 충북 영동은 애호가들에겐 유명하다. 이 와인은 세계적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에게 한국 와인 최초로 점수를 받고 세계 품평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 1호 포도 품종이다. 신선한 과일향과 허브향, 산뜻하게 입안에서 춤을 추는 산미는 여름에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그레이스톤, 에린 샤르도네(Greystone, Erin‘s Chardonnay) :화이트 와인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평론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프랑스 와인의 대항마로 보기 때문이다. 와인 전문가이면서 애호가인 율링의 박준용·이경희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뉴질랜드에 집중해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스톤이라는 유기농 와이너리의 ‘에린’은 고급 화이트 와인의 전형이다. 여러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초고가 프랑스 와인들을 꺾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흑백요리사로 유명한 안성재 셰프의 레스토랑 모수에도 리스팅됐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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