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정원을, 정원에서 인간을 읽다

입력 : 2025-07-06 09:00:00 수정 : 2025-07-06 20: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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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의 책/ 황주영
문학·미술·조경·건축 전공한 저자
문학 속 정원 새로운 의미로 해석
사랑·치유·꿈·그리움 가득한 정원

클로드 모네 '앙티브 정원사의 집'.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 출판 제공 클로드 모네 '앙티브 정원사의 집'.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 출판 제공

구스타브 클림트 ‘코티지 가든’.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구스타브 클림트 ‘코티지 가든’.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정원의 책>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정원에 관해 쓴 책인지 혹은 정원에서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겠다는 것일지 궁금했다. 저자의 이름이 낯설었고, 저자가 이전에 출간한 책이 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저자의 첫 책이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후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조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연수 과정으로 건축 공부를 했다.

문학과 미술, 조경과 건축을 모두 공부한 저자는 과연 정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해졌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원과 글쓰기라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은 이미 많은 작가가 했고, 이를 ‘정원 글쓰기(가든 라이팅/garden writing)’이라고 부른다는 소개도 한다. 저자는 정원 독서라는 폴더를 만들고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정원을 찾아낸 후 그에 관한 단상을 쓰기 시작했다.

자료 읽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저자는 정원과 관련된 모든 책을 읽으려 했고, 여전히 쏟아지는 책을 사고 있다. 그럼에도 <정원의 책>을 쓴 건 그 많은 정원 관련 책 중에서도 자신이 읽고 싶은 '그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옷장을 보고서도 “입을 옷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책은 26편의 문학 작품을 통해 정원에 반영된 인간의 욕망을 분석한다. 문학 미술사 조경 건축을 전공한 저자답게 인류 최초의 문학으로 전해지는 기원전 24세기 무렵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2025년 현재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김초엽 작가에 이르기까지 시간, 공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 작품을 언급한다. 책 곳곳에 저자의 이야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명화들까지 삽입해 독자들의 생각 주머니를 확장해 준다.

볼테르, 루소, 괴테, 찰스 디킨스,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톨킨, 마거릿 애트우드, 파스틸 키나르 등 유명한 작가들이 작품에서 그려낸 정원들은 독특한 의미가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쭉 그랬듯 깊은 사랑과 치유, 간절과 꿈과 미래,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을 정원에 심는다.

저자는 “어떤 정원은 잔잔한 시 같고, 또 어떤 정원은 후속편이 기대되는 연재소설 같고, 어떤 정원은 홍보 전단 같다. 정원의 모습을 분석하고, 정원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읽고, 보이지 않는 행간을 헤아려 비평하는 일은 예술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덧없고 무용한 아름다움, 사라지고 되살아나는 과정에 경탄하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그러므로 문학에서 미술사로, 또 조경사로 전공이 달라졌어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저자의 이 말을 다시 보며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로 느껴졌다.

안정애 ‘벚나무 연작 16-1’.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안정애 ‘벚나무 연작 16-1’.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C.D 프리드리히 '가든 테라스'.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C.D 프리드리히 '가든 테라스'. <정원의 책>에 나오는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책에 언급된 수십 개의 정원 중 인상적인 몇 곳이 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하고 조성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영국 리버풀 교외의 작은 도시 버켄헤드를 방문하고 깜짝 놀란다. 세계 최초로 시민들이 돈을 모아 버켄헤드에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정원이나 녹지는 오랫동안 왕족, 귀족 등 소수의 혜택받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고 권력이었다. 이에 감명받은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라는 엄청난 공원을 만들게 된다.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에선 캔디의 왕자님 안소니가 가꾸는 장미 정원이 나온다. 안소니는 자신이 개발한 장미 품종을 ‘스위트 캔디’라고 이름 붙였고, 장미 정원에서 캔디와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한다. 낙마 사고로 안소니가 죽고 그의 장미 정원은 황폐해진다. 오랜만에 읽는 캔디 이야기가 반가웠지만, 저자는 안소니 같은 부유한 가문의 도련님이 장미 육종이라는 취미를 가졌단느 설정과 1960~1970년대 서구적인 아름다움을 추종했던 당시 일본 사회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책에선 많은 이들이 이미 읽었을 것 같은 유명한 문학 작품이 언급되지만, 정원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보니 새로운 작품처럼 다가오는 재미가 남다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고 소비되는 시대지만, 정원과 문학처럼 시간을 들여 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것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 반갑다. 자주 보고 깊이 보면 몰랐던 것이 보이고 더욱 사랑하게 된다. 황주영 지음/한겨레출판/272쪽/1만 8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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