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 8일 부산 최고기온은 34.8도로 1904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7월 상순(1~10일) 기온 최고점을 찍었다. 경남 밀양 역시 지난 7일 낮 최고기온이 39.2도까지 오르며 7월 상순 최고기온 중 1위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도 올 7월 상순 기온은 역대 최고점에 달했다. 지난 8일 서울은 한낮에 37.8도까지 오르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천도 35.6도까지 올라 기상관측 이후 7월 상순 최고기온으로 기록됐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서는 낮 40도 돌파와 초열대야(밤 최저기온 30도 이상) 발생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번 극한 폭염은 대기 상층에는 티베트 고기압이, 중·하층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겹치면서 발생했다. 두 고기압이 ‘이중 고기압 층’을 형성하며 발생한 열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뜨거운 남풍과 동풍이 번갈아 불면서 우리나라를 달구고 있다.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는 아무리 더워도 낮 40도와 초열대야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름철 바다에서 해풍이 불어와 대기의 과도한 가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난화 여파로 대기와 해수면 온도가 동반 상승하며 여름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공기 자체가 열풍이 됐다는 것이다. 극한 폭염을 막아주던 한계선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망가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7월 말과 8월 초에는 더 큰 폭염이 온다고 하니 걱정이다.
폭염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 8일 하루에만 온열질환자가 238명에 달했다. 7월에 온열질환자가 하루 200명 이상 발생한 것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올해 5월 15일부터 지난 8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총 122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78명 대비 2.6배에 달한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이다. 장시간 노출되면 두통·어지럼·근육 경련·의식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고, 방치 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올여름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8일까지 모두 8명으로 파악된다. 지난해(3명)의 약 3배다.
극한 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폭염 취약 계층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부산시가 파악한 폭염 취약 계층은 독거노인 22만여 세대를 비롯해 노숙인, 쪽방 거주자, 중증 장애인 등 모두 27만여 명에 달한다. 일터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청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도 폭염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폭염 시 건설 현장과 공장 노동자의 작업 중단권을 둘러싼 논의에도 진전이 필요하다. 실효성 있는 규정을 마련해 누구라도 충분한 휴식권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극한 폭염은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상적인 재난이며, 불편을 넘어 불평등까지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폭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산업계 등이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사회적 차원의 지원과 배려에 나서야 한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의 열섬 현상 완화를 위해 녹지 공간을 더 많이 늘리고, 건물 설계 개선, 폭염 쉼터 지정, 정확한 날씨 예보·경보 시스템과 인력 확충 등 복합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극단적인 기후 현상으로 인한 기후 재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부도 국가적인 ‘기후 위기 대응 콘트롤타워’ 증대 필요성에 따라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이기도 하다. 국정기획위원회도 지난 8일 기후에너지 TF를 신설했으며 탄소중립 정책 추진, 기후위기 대응 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확대 등 이 대통령의 관련 공약을 중점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이미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독립 부처를 운영하며 탄소중립을 목표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농림부, 해수부, 기상청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다. 특히 산업부는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담당하고 있는데, 양 부처 업무가 분리돼 정책 통합과 조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기후에너지부 조직개편 과정에서도 규제 성격의 부처인 환경부와 진흥 성격의 부처인 산업부의 유기적 결합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는 결국 에너지 문제라는 점에서 기후에너지부를 통한 통합 거버넌스 구축은 바람직하다. 기후 위기 대응, 탄소중립 이행,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전환 전략을 한 곳에서 조율하는 전담 부처는 필요하다. 다만, 기후에너지부 신설 관련 조직개편에 대해 여러 방안이 검토 중이고, 구체적 로드맵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새 정부가 정교한 정책 조율을 통해 기후에너지부를, 실행력을 갖춘 행정 조직으로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