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내각 절반이 국회의원

입력 : 2025-07-13 17: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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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은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바로 의원직을 사임했다. 미국 헌법은 각료와 의원의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다. 프랑스도 내각에 발탁되면 의원직을 수행할 수 없다. 삼권분립에 기반한 대통령제는 행정부가 국정을 책임지되, 입법부가 대통령 탄핵을 포함한 견제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한국은 대통령제의 역사가 길지만 출발은 내각제였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시원인 상해 임시정부는 국무총리가 행정수반을 맡았다. 제헌의회도 내각제 지지가 다수였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에 대통령제를 채택하되 대통령 국회 간선제와 의원 입각 허용 등 내각제적 요소를 절충하는 것으로 타협됐다. 개헌을 거듭하며 대통령은 직선제로 바뀌었으나, 의원의 내각 겸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한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에는 현역 의원이 아예 없었고, 역대 정부마다 서너 명 정도에 그쳤다. 김대중(DJ) 정부 때 김종필(JP) 국무총리 등 10명의 의원이 각료로 진출한 건 예외적이었다. ‘DJP연합’이 내각제 개헌을 공약했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각료 과반을 국회의원으로 채웠던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현역 의원이 장관이 되면 입법부 고유의 견제 기능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상임위에 못 가고, 국회 3대 임무인 입법과 국정감사, 예산 심의 수행도 불가능하다. 또 정부 정책을 수행하면서도 차기 선거를 의식하는 정체성의 딜레마에 빠진다. 포퓰리즘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의 총리와 장관(19명) 지명자 중 현역 국회의원은 9명(45.0%)이다. 내각제를 내세운 ‘DJP연합’을 제외하면 역대 최다 입법부 차출이라 의원내각제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각료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오늘 시작된다. 자질·도덕성 검증도 중요하지만 의원 입각의 장단점도 이번에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전임 윤석열 정부의 실패 배경에 대통령과 의회의 불통이 으뜸으로 꼽힌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건강한 비판 관계가 훼손되면서 치른 국가적 손실이 너무 컸다. 5일 간 이어지는 인사청문회 슈퍼위크 중 제헌절(7월 17일)을 맞는다.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의원 다수의 내각이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협치를 이끌어 낼지, 반대로 삼권분립과 입법부 견제 기능 약화로 또 다른 불통을 초래할지.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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