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항의 경쟁 항만은 어디일까

입력 : 2025-07-13 17: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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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수출입·환적 각각 1000만TEU 세계 유일
부산, 독점 지위·치열한 생존 다툼 혼재
국가 정책, 지리, 선사 전략 따라 가변적
어느 관점 보느냐 따라 라이벌 달라져

‘경쟁 항만’이라는 표현은 항만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용어다. 부산항의 경쟁 항만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중국, 일본, 대만의 아시아 주요 항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 관계를 논하려면 먼저 무엇을 두고 경쟁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살펴볼 대상은 수출입 화물이다. 한국에서 수출되는 해상 컨테이너 화물은 한국 항만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에 한국의 수출입 화물은 외국 항만과 경쟁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따라서 수출입 화물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국내 항만 간의 경쟁이다. 예를 들어 부산항과 광양항, 인천항, 울산항이 수출입 물동량을 놓고 점유율 싸움을 벌이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은 이 네 개 항만 모두가 중앙정부 소속 항만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항만 간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기능의 분담과 협업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친다.

반면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 나라의 대부분 항만은 지방정부가 운영 주체다. 예컨대 중국의 상하이항과 닝보항은 직선거리로 불과 150㎞ 떨어져 있으며, 저장성·장쑤성·안후이성 등 동일한 배후 권역의 수출입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최근에는 산둥성의 칭다오항까지 이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미국 1, 2위 컨테이너항인 서부의 LA항과 롱비치항도 바로 인접한 위치에서 수출입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펼친다.

그래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경쟁의 대상은 환적 화물이다. 환적이란 제3국의 화물이 특정 항만에 도착한 뒤 다른 선박으로 갈아타고 또 다른 국가로 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부산항 물동량의 절반 이상이 환적으로, 이는 자국 수출입 중심 항만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다. 세계적으로도 수출입과 환적 물량이 각각 1000만TEU를 넘는 항만은 부산항이 유일하며, 환적 물량으로는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환적은 선사의 선택에 따라 이뤄진다. 선사는 선박 운영 효율, 항만 서비스 품질, 비용, 위치, 연결 노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적항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부산항의 환적 화물은 인근의 칭다오, 상하이, 가오슝, 도쿄 등과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만약 컨테이너 1개가 다른 항만에서 환적되면, 부산항은 해당 물량을 아예 잃는 셈이 되고, 반대로 부산에서 환적이 이뤄지면 양하 1회, 적하 1회를 각각 기록하게 되어 2개의 환적 실적이 집계된다.

중국은 세계 수출의 중심지로, 아시아발 북미향 수출 컨테이너의 60%, 유럽향 수출의 75%를 중국이 점유한다. 이 막대한 물량 덕분에 세계 상위 10대 항만 중 7곳이 중국에 몰려 있다. 그러나 중국 항만의 대부분은 자국 내 수출입 화물에 기반하고 있어 환적 비중이 크지 않다. 상하이나 닝보항의 국제 환적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중국 내륙에서 트럭이 아닌 내항선으로 상하이까지 운송된 후 중국 타 항만으로 다시 해상 운송되는 화물은 엄밀히 말해 환적이 아니라 내수 물류다.

중국과는 반대로, 환적 물량 기준 1위 싱가포르나 3위 말레이시아 탄중팔레파스항처럼 환적 중심 항만도 있다. 하지만 이들 항만은 지리적으로 떨어진 위치에 있고 환적 시장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부산과 경쟁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 상하이, 칭다오, 홍콩, 가오슝, 일본의 주요 항만 등은 지리적으로만 봤을 때 경쟁 관계가 형성된다.

일본은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인구는 1억 2000만 명이 넘지만, 국제무역의 비중이 한국보다 낮아 연간 해상 수출입 물동량은 약 1700만TEU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물류의 분산 구조다. 부산항이 국내 전체 수출입의 62%를 처리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1위 항만인 도쿄가 28%, 2위 요코하마가 16%를 차지할 정도로 컨테이너 집중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주요 5대 항만과 더불어 80개 이상의 지방 항만에서 물동량이 분산 처리된다. 집중도가 떨어지면 대형 모선이 기항하기 힘들고 환적도 발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 전체 국제 환적 물량은 부산항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가 정책, 지리, 선사 전략, 수출입 구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어, 단순히 “부산항의 경쟁 항만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내리긴 어렵다. 수출입만 놓고 보면, 부산항은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반면 환적 물량에 한해서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수많은 항만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쟁 항만 개념은 지극히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결국 부산항의 경쟁 항만에 대한 답은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이 질문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판단은, 독자 여러분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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