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부산항은 다시 우리를 미래의 기대로 설레게 할까?

입력 : 2025-07-16 17: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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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주, 부산항, 199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의주, 부산항, 199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바캉스라는 말이 어느새 듣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여름은 푸른 바다가 으뜸이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으로 보는 부산 앞바다와 항구는 수십 년 전만큼은 아닌 듯하다. 바다가 주는 힘찬 생동감보다는 뭔지 모를 불안과 공포가 오리라는 막연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주함이 아름다웠던 시절을 담은 이의주 작품 ‘부산항’을 보며 다가올 우리 미래를 곱씹어 본다.

이의주(1926~2000)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 제1회로 1948년 입학했다. 졸업한 뒤 곧바로 양정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 온실에서 그렸던 작품 ‘온실의 여인’으로 1960년 제9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8년 교사직을 사직하고 원광대 교수를 거쳐, 1974년부터 부산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부산에 정착하며 작고할 때까지 어떤 작가보다 부산을 사랑하여 부산 풍경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편, 1967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국가 문화정책의 하나로 실행했던 ‘민족기록화사업’에 적극 참여해 정부가 의뢰한 작품과 그 외 기록화 작품 등 22점을 제작해, ‘민족기록화전’ 분야에서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했다.

‘부산항’은 흰 구름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영도 봉래산의 파랑이 눈에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오른쪽 아래에 영도다리, 용두산공원에서 솟아오른 부산타워와 팔각정 그리고 왼쪽 멀리 수평선과 맞닿은 곳에 오륙도가 보여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산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위치가 가늠되면 어디서 본 풍경을 그린 것인지 궁금해 추측해 보면, 동아대 옆에 있는 400m 높이의 구봉산자락 어디 아닌가 싶다. 이처럼 그린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사실에 기반한 풍경화이고, 이의주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항 앞바다에 오가는 크고 작은 배들과 푸른색 봉래산 밑에 자리한 영도 조선소에 촘촘히 늘어선 배, 높낮이가 저마다 다른 빽빽한 건물로 둘러싸인 풍경에 사람 하나 없어도 분주함이 느껴진다. 이 풍경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바닷물은 섬세하게 색감 차이를 두고 조금 빠른 필치로 표현하면서, 화면 가장자리에 있는 건물과 숲 등은 여러 색으로 뭉개버려 시선을 가운데로 끌어당긴다. 이점이 풍경화 ‘부산항’의 묘미이다.

지난 추억은 아름답기 마련이라고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려졌던 시대에 순박한 우리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이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런 희망과 자유가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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