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필리핀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 낯선 언어,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분명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나와, 지금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같은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학생이었던 나는 한국인과 필리핀 현지인 사이의 묘한 관계를 느꼈다. 한국인들은 선주민들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을 꺼렸고, 식기구도 따로 썼다. 돌이켜보면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달라서 느끼는 차이점은 있었지만, 한국인이어서 차별받은 경험은 없었다.
얼마 전 나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를 방문해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한 번도 겸상한 적 없다’는 세 명의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내가 보고 경험한 대로, 한국인들은 역시나 이주민들과 겸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함께 밥을 먹던 이주민 중 한 명은 공장에서 일하다 한국 사람에게 맞아서 전치 2주가 나왔었다는 이야길 했고, 다른 한 명은 공장 일을 하다 팔을 다쳤는데 공장주의 무리한 지시로 아픈 팔로 일을 했다는 이야길 했다. 모두 2025년에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에 온 이방인들은 그런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최근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공사장 지하 1층에서 하청업체 소속 베트남 국적 일용직 노동자가 앉은 자세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안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발견 당시 체온은 40.2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일 구미의 최고기온은 38.3도로, 7월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고온 환경에 의한 온열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추정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현장의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폭염 안전 대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례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운이 아닌,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130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사회로 진입했으며, 이들은 우리 사회가 기피하는 3D 업종의 빈자리를 채우며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어렵고, 인권 침해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의료 접근성의 한계 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가중시킨다.
부산 역시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부산 지역 제조업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단순 노동 기반의 제조업을 선호하지 않고 더 나은 임금과 근무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이들이 현재 처한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탈을 선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부산의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외국인 근로자의 잦은 이직과 이를 제어할 수단이 없음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권익과 처우 개선이 곧 우리 지역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됨을 시사하는 셈이다.
현 정부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확대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노동력 공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고용허가제(E-9)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확대하고, 노동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과 의료 접근성 확대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를 보장하여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지속하여,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자 함께 발전해나갈 파트너로 인정하는 문화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함께 가야 한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와 선주민들이 함께 밥을 먹는 ‘코이노니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교제 등을 뜻하며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다. 단순히 친목을 넘어서 어떤 대상이나 목적에 함께 참여하고 동참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겸상’이 오랜 시간 공동체의 깊은 유대감을 의미해왔음을 고려할 때, 이주민과의 식탁은 그들의 아픔과 슬픔,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들을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려는 시도들이 매우 필요하다. 나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데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각자의 자리에서 벽을 허무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