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은 치세 동안 남긴 업적으로도 후세에 길이 칭송을 받는 복을 누리고 있으나 살아 생전 왕으로 즉위할 당시에도 조선의 그 어느 왕보다 큰 복을 누렸다. 조선의 역대 왕 중 드물게 선왕의 장례식을 즉위식과 함께 치르지 않은 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승하 후 이뤄지는 행사여서 기쁜 표정으로 성대하게 행사를 벌이기가 곤란했다. 유교국가인 조선은 충과 함께 효를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즉위식 자리는 오히려 선왕의 장례식에 더 치중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왕인 태종이 상왕으로 살아있는 가운데 벌어진 세종의 즉위식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축제 분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418년 8월 1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세종의 즉위식은 태종이 직접 준비한 축제였다. 〈세종실록〉에는 ‘태종이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경복궁에 나아가 신왕의 즉위를 축하하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아들을 위해 슬그머니 신하들의 등을 떠밀며 축제 분위기를 좀 띄워 달라고 하는 태종의 모습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
이 같은 부친의 뜻을 잘 이해한 세종은 즉위식에서 “일체의 제도를 모두 태조와 우리 부왕께서 이루어 놓으신 법도를 따라 할 것이며 아무런 변경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즉위교서를 반포했다. 맏형인 양녕대군 대신 자신을 세자로 삼고 즉위식까지 거행토록 한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아버지 시대의 법도를 이어가겠다고 화답을 한 것이다.
세종의 즉위식과 가장 대조를 이룬 즉위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들 문종의 즉위식이었다. 문종은 즉위 직전인 1446년 모친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3년상을 치르고 곧바로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다시 세종의 3년상을 치르느라 병을 얻어 즉위 2년여 만에 승하하고 말았다. 연이은 국상으로 즉위식이나 제대로 치렀을지 의문일 정도다.
현대에는 왕의 즉위식 대신 대통령 취임식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약식 취임선서 이후 취임식 대신 제헌절에 임명식을 거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임명하는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새기겠다는 취지다. 당선 당시 공식 발표를 했으나 제헌절 행사는 국회의장 주관이라 임명식 개최일로 맞지 않다는 여론도 있어 깜짝 임명식 개최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언제가 됐든 곧 열리게 될 이재명 대통령의 임명식이 세종의 즉위식처럼 시대의 축제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길 바란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