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위법·위헌적인 대통령의 계엄 발령과 국회의 계엄령 해제부터 시작된 관련자 구속 및 대통령 파면과 대선, 그리고 3대 특검법 발의에 이은 특검의 행보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정국에 국민은 분노와 환호가 교차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난 7개월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나라가 수렁에 빠질 위험에 처할 때마다 어느 누구보다도 국민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수호하였던 역사의 패턴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순식간에 여야가 뒤바뀐 정치권과, 검찰의 숱한 기소와 압수수색을 감당하고도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상대 진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나 같은 일개 소시민에게 ‘정치’는 그동안 헛구역질과 빈혈 그 사이거나 언저리에 자리 잡은 이상한 나라의 ‘협잡’과 같은 것이었기에, 최근 7개월 동안 벌어진 급박한 정세는 비로소 스스로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20년 넘게 지지부진 북항 재개발
시민 라운드테이블로 공공성 확대
해수부 부산 이전 계기로 순항하길
따지고 보면 이 나라에 민주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든다. 짓누르는 자나, 이에 대항하여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나 늘 대의를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명분을 잃은 세력이 활개를 치더라도 결국 명분을 고수하려는 세력이 이겨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에 있으면 멈칫거리거나 주저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들여다보면 명약관화한 것이었음을 깨닫고서는 무릎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는 생생한 현실이 지층처럼 쌓인 무늬이되, 그 무늬가 만드는 물결을 아로새기는 더욱 큰 그림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두고 잡음이 많다. 정부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시급히 착수하고 있고, 해수부 공무원 노조는 예전 세종시 정부 청사 이전을 실례로 들어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각종 지원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부산 이전을 극구 반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파를 떠나 해수부가 부산에 오면 부산 사람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부 기관 이전으로 발생하는 경제 파급효과가 가뜩이나 침체된 원도심에 단비와도 같기 때문이다. 해수부 임시 청사는 현재 북항 재개발사업 지구를 지척에 둔 자리에 마련됐다. 임시 청사 시대를 거쳐 향후 정식 청사가 북항 재개발지구 사업 구역 내로 이전한다면 기존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있던 해수부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 및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을 잇는 해양 관련 국가기관 벨트와, 부산 최대 현안 사업 가운데 하나인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 지구가 맞물려 한국 해양 산업을 비롯한 해양 발전 로드맵을 위한 메카가 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항 북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계획하여 북항 재개발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2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북항 재개발사업이 해수부의 이전으로 순항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국내 첫 항만재개발사업으로서 북항 재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크나큰 자부심으로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국가사업을 두고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딴지를 거는 몇몇 세력이 있다. 정파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부터 해대는 이들의 셈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부산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논리에 따른 행동은 끝내 자신들을 향하는 화살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013년 북항 재개발사업이 참여 기업의 사업 논리에 치우친 난개발의 우려가 제기되자 결성된 북항 라운드테이블의 활동을 되새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이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이 여러 차례 검토와 회의를 거쳐 공공성을 확대한 북항 재개발사업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때 확정된 사업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2019년 해수부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단이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발족됨으로써 추진력을 얻어 지금의 북항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가져오려는 게 국가사업의 최종 목표일진대, 이런 큰 그림을 외면한 채 당장 자기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력의 목소리에 명분이 짓밟힐 때 지난해 연말 나라를 요동치게 만든 사태는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 또 한 번 그런 사태가 불거져서 그간 힘들게 쌓아두었던 시민들의 지혜와 역량을 또다시 소모해서야 되겠는가. 인간의 지혜와 슬기를 올바른 일에 쏟아부을 때 나라와 시민 개인의 성장은 자연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