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에 공개되자마자 40여 국가에서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고 공개 4주차까지도 글로벌 영화 순위 1, 2위를 지켰다.
영화에 수록된 노래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에 수록된 ‘Your Idol’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BTS의 ‘다이너마이트’도 넘지 못한 기록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수록된 다른 노래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글로벌 200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차트 석권한 K애니메이션
자부심과 자조 사이 엇갈린 시선
콘텐츠 주도권보다 완성도 중요
문화 보급 방식도 혁신 필요한 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 할리우드의 소니픽처스에서 케이팝을 소재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즉 미국에서 만든 한국 배경의 이야기인 셈이다. 따라서 대사, 노래가 영어로 이루어졌지만 이야기 배경이 서울이고 등장인물이 한국인인 만큼 작품 곳곳에 한국의 모습과 문화가 담겨 있다.
여자 아이돌 헌트릭스의 의상에는 노리개가 달려있고 남자 아이돌 사자보이스는 도포를 입고 갓을 썼다. 이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고, 설렁탕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는 수저 아래 휴지를 깐다. 이 외에도 무속 의식에 사용되는 사인검과 신칼, 호작도의 호랑이와 까치 등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현대문화까지 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묘사가 디테일하게 살아있다.
‘메이드인 USA K콘텐츠’의 성공에 대한 국내 언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민족주의적 관점의 ‘국뽕형’이다. 한국 콘텐츠가 우수해 세계에 통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콘텐츠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식의 논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중국 영화를 우리가 보지 않는 것처럼, 우리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콘텐츠는 세계에서 외면받을 것이 자명하다.
두 번째는 이렇게 좋은 K콘텐츠를 우리가 만들지 못했다는 ‘자조형’이다. 우리의 케이팝 아티스트와 프로듀서가 작업에 일부 참여하기는 했지만 한국 창작자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으로 기획, 제작하고 투자, 배급해 성공했다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나아가 향후 K콘텐츠의 제작 주도권을 뺏기고 우리 창작자와 문화 산업이 소외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그러나 K콘텐츠를 꼭 우리나라에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더욱 장려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한류 4.0 시대를 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한류 발전 단계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눈다. 한류 1.0 시대는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유사성이 강한 동북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가 확산한 한류의 태동기이다. 한류 2.0 시대는 K팝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 전체와 일부 서구 문화권으로 한국 문화가 퍼져나간 한류의 성장기이다. 한류 3.0 시대는 드라마, K팝과 같은 특정 장르가 아닌 K문화 전반이 전 세계로 널리 확산하는 한류의 확산기이다.
한류 4.0 시대는 장르가 K문화를 넘어서 K라이프 스타일로 확대되고 전 세계의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누리는 한류의 지속기라고 지칭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주류 문화로서 보편적으로 향유할 때 ‘어디에서’, ‘누가’ 콘텐츠를 생산했는지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서 생산했든 외국에서 생산했든 그것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에 참여한 짐 로포 리퍼블릭 레코드 회장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더 이상 K팝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대중문화 현상이 되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이제 한류 4.0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한류 4.0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로서 의의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을 바라보며 자조 섞인 한탄과 걱정을 하기보다 더 다양한 국가에서 더 다양한 K콘텐츠가 생산되고 제2, 제3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나아가 한류 콘텐츠 전반이 4.0 시대에 맞게 레벨 업해야 한다. 한국인을 해외에 파견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서 현지인 한국어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현지인 요리사가 자국 기호에 맞게 한국 요리를 만들어 누구나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도약해야 한다. 또 이렇게 될 수 있게 우리의 문화 보급 정책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성공에서 읽어야 할 함의이다.